[SDN, 네트워크 혁명](상)불붙은 미래 네트워크 전쟁

차세대 네트워크 시대가 열렸다. 네트워크 제어부를 소프트웨어로 바꾸는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가 키워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이미 SDN 시장 선점에 나섰다. 네트워크 혁명은 콘텐츠(C) 플랫폼(P) 단말(D) 등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예고했다. 글로벌 주도권 경쟁에 나선 선진국 움직임과 우리나라 대응전략을 2회에 걸쳐 점검한다.

#일본통운은 요즘 네트워크 구성을 변경할 때마다 장비공급사를 따로 부르지 않는다. SDN을 도입한 후 제어부 소프트웨어만 재설계하면 손쉽게 구성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장비업체를 부를 때마다 지급한 비용 200만엔(2000만원)도 절약하게 됐다.

#BMW는 최근 SDN 컨트롤러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생산라인 네트워크 관리 시간이 크게 줄었다. 그동안 생산라인 곳곳에 설치된 액세스·분산계층 스위치 2000여대를 일일이 찾아가 조정해야 했던 업무가 중앙 SDN 컨트롤러 프로그램만 조작하면 한번에 해결되기 때문이다.

#일본 카나자와 대학부속 병원도 새로운 의료기기 도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진료부서마다 구축된 네트워크 설정변경과 접속검증을 수작업으로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SDN 도입 후 컨트롤러를 중앙에서 한 번에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SDN도입으로 효과를 본 실제 기업·기관의 사례다. SDN은 각종 네트워크 장비의 제어부를 소프트웨어로 구성해 한곳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기존 폐쇄적인 네트워킹 기술을 개방형으로 바꾸는 중요한 단초로 평가받는다.

오픈네트워킹파운데이션(ONF) 창립멤버 스콧 솅커 UC버클리 교수는 “SDN의 출현은 네트워킹에서 소프트웨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스위치, 라우터 등 하드웨어 인프라가 장악했던 네트워크 제어권을 망 소유자, 서비스 사용자 또는 각각의 애플리케이션이 가져가는 의미다.

이미 구글, 버라이즌, NTT, e베이, CERN(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 등 주요 통신사, 인터넷 기업, 기관이 SDN을 활용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상용 SDN 솔루션을 내놓는 일본 NEC는 실제 망에 적용한 SDN 레퍼런스만 20건이 넘는다. 테스트 단계에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NEC라는 단일기업이 진행한 SDN 사례는 100건이 넘어섰다.

SDN이 네트워크 운영 차원에서만 주목 받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서비스에서도 파급력을 미친다.

SDN 대표 프로토콜인 `오픈플로(Openflow)`를 망에 적용하면 e메일보다 비디오 콘텐츠를 우선 받도록 설정할 수 있다. 특정 트래픽을 보안목적으로 전달 단계부터 격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에는 아무도 손대기 어려웠던 종단 네트워크 경로를 쉽게 변경 할 수 있는 셈이다.

SDN이 미래인터넷 핵심기술로 떠오르며 생태계에도 변화 조짐이 엿보인다. 장비업체가 독점한 네트워크 시장에 소프트웨어 업체의 진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는 셈이다.

네트워크 업계 최강자인 시스코는 그동안 가상화 업체 VM웨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VM웨어의 경쟁사인 시트릭스와 협업이 가능한 솔루션을 발표하는 등 전략을 수정했다. VM웨어가 지난해 SDN 컨트롤러 업체 니시라를 인수하며 시스코의 네트워크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다 정교화된 SDN 컨트롤러 출시가 활기를 띠면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업체의 기득권도 서서히 사라질 전망이다.

IDC는 2015년 SDN 시장 규모는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네트워크의 30%가 SDN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내다봤다.

황금어장으로 떠오른 SDN 시장 진출은 미국(스탠퍼드 대학, 빅스위치, 니시라)과 일본기업(NEC)이 주도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화웨이 등 중국진영까지 가세하며 표준화 논의에 불을 당겼다.

국내에서는 통신사업자를 중심으로 관심이 뜨겁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KT와 SK텔레콤은 사내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경쟁적으로 자체 컨트롤러 개발에 열을 올린다. 니시라, 빅스위치와 선도기술 전수를 위한 협의도 진행 중이다.

NHN 역시 오픈소스 `플루드라이트(Floodlight)`를 이용한 SDN 컨트롤러 개발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영석 오픈플로우코리아 기술 매니저는 “SDN 기술을 놓고 벤더, 국가 간 주도권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한국도 주요세력 간 경쟁으로 생기는 균열을 노려 시장 선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