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어느 중견기업인의 R&D 불만

얼마 전 한 중견기업 대표와 점심을 같이 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는 수출 강소기업이다. 수출이 전체 매출의 90%를 넘는다. 시장 점유율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대화가 인력과 연구개발(R&D)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정부가 대기업에 R&D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마뜩치 않아 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빅5 대학 출신을 거의 못 뽑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계 1·2위를 한다”면서 “좋은 인력을 싹쓸이 하는 대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내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덧붙여 그는 “우수 인력과 막대한 자금, 장비까지 갖춘 대기업이 정부 R&D 자금까지 대거 지원 받는 건 이해가 안 된다”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직접 만나본 대부분의 중소기업인은 비슷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지원 규모도 도마에 오른다. 정부가 대기업에 지원하는 R&D 액수는 몇 백억원인데 중견기업은 많아야 몇 십억원이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2007~2011년) 정부 R&D 자금 지원액을 봐도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증가율이 높았다. 이 기간 대기업은 5923억원에서 1조3861억원으로 연 평균 23.7% 뛰었다. 반면 중소기업은 16.1%(1조148억 원→1조8469억 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대기업 R&D도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5년 후, 10년 후 우리를 먹여 살릴 `큰 기술`은 대기업이 아니면 연구할 수 없다. 하지만 대기업은 정부 지원이 없어도 알아서 연구개발을 할 체력을 갖췄다.

삼성전자의 최근 3년간(2010~2012년) R&D 비중은 6%대 였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20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연간 10조원 정도를 R&D 비용으로 쓴 셈이다. LG전자 역시 매년 2조원 안팎을 R&D 비용으로 투입한다. 대기업은 원칙적으로 자체 자금으로 R&D를 수행해야 한다. 정부 지원을 줄여도 별 문제 없이 할 수 있다.

대기업에 대한 R&D 지원은 그 투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늘리는 게 더 올바른 방향이다. 곧 출범할 새 정부는 중견기업과 강소기업 육성을 강조한다. 정부 R&D 자금 역시 이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중견기업은 대기업 못지않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 점에서도 이들의 성장을 적극 이끌어야한다.

1990년대 중반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이 2000년대 들어 세계 선도 국가로 전환한 것은 R&D기반 중견기업 덕분이다. 매년 약 100억 달러(약 11조원)의 R&D비를 기업에 지원하는 이스라엘도 85%를 중기에 투입한다.

우리나라 중견기업 수는 지난해 기준 1420여 곳이다. 이들의 총 매출은 373조원에 달했다. 이중 100곳에 100~200억원 씩 지원해 절반만 성공해도 우리 경제는 큰 활력을 찾을 것이다.

방은주 경인취재부장 ejbang@etnews.com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