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271>`뒤집다`와 `엎다`의 차이(2)

`국어실력이 밥먹여 준다: 낱말편 2`에 보면 `뒤집다`와 `엎다`의 차이가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다. 뒤집는 것은 언제나 정상적인 위치에 있어야 될 앞이나 안이 거꾸로 뒤나 속이 보일 때 사용한다. 뒤집기 이전의 앞과 안이 뒤나 속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결국 몸을 `뒤집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얼굴이 있는 앞쪽을 위로 한다는 말이고, `엎는다`는 말은 그 반대다.

뒤집으면 다시 원상복귀가 가능해서 다시 쓸 수 있지만, 엎으면 영원히 못쓰게 된다. 밥그릇을 `엎으면` 밥을 담을 수가 없고, 숟가락을 `엎어서는` 국물 한 방울도 뜰 수가 없다. 살림을 `엎으면` 일상생활이 곤란해진다. 이런 점에서 `엎는` 일은 `뒤집는` 일보다 과격하다. `엎다`가 `뒤엎다` `갈아엎다` `때려엎다` `뒤집어엎다`와 같이 더 센 느낌을 주는 복합동사를 거느리게 된 것도 그 과격함을 한층 더 살리기 위해서다. 반면에 `뒤집는` 대상은 대개 안에 내용물이 들어있지 않은 빈 상태를 상정한다. `뒤집은` 것은 언제든 도로 돌려놓을 수가 있지만, 뭔가를 `엎으면` 그것으로 상황은 끝이다. 발칵 `뒤집힌` 집안은 집안 식구들의 `뒤집힌` 속이 가라앉으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지만, 살림은 일단 `엎으면`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된다는 점에서도 `뒤집기`보다는 `엎기`가 더 심각하다. 무언가를 `엎기` 전에 서로 처지를 `뒤바꾸어` 생각해보는 `뒤집기`를 충분히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관계의 `뒤집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엎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유도나 씨름에서 `뒤집기`보다는 상대를 밀거나 잡아당겨 쓰러뜨리거나 번쩍 들어서 넘어지게 했을 때, 즉 적수를 엎었을 때 완승을 거둘 수 있는 이치와 비슷하다(`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 낱말편 2 중에서). 그만큼 엎어버리면 치명적이다. 엎는 기술을 연마하기 이전에 뒤집는 기술을 충분히 연습해야 결정적인 순간에 뒤엎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가정은 `뒤집거나` `엎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깨질` 수 있는 대상이다. 그만큼 가정은 소중하다. 한 번 `깨진` 가정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치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