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40대는 흔히 말하는 `뺑뺑이` 세대다. 당시 중·고등학교 시절엔 물레처럼 생긴 뺑뺑이를 돌려 상급 학교를 배정받았다. 뺑뺑이를 돌리면 나오는 구슬 번호에 따라 입학 학교가 정해졌다. 이렇게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추첨을 위해 또 한 번 뺑뺑이를 돌려야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운명의 뺑뺑이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대신에 컴퓨터가 개인 성적과 주소지에 따라 자동으로 학교를 배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운(運)에 맡긴 채 물레처럼 생긴 기구를 떨리는 손으로 돌려야만 했던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일부에선 컴퓨터 추첨이 불공정하다는 의혹도 제기했지만, 최소한 한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 불합리한 일은 사라졌다. 교육 평준화 정책을 준수하면서 성적과 주소지에 근거해 내가 다닐 학교를 현명하게 선택받은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삶에 들어온 것은 멀리 잡아도 70년 정도다. 이 짧은 기간에 컴퓨터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IT는 더 이상 지적 활동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휴대폰을 통해 말하고 듣는 것에서부터 거리를 걷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동들이 컴퓨팅과 연결된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모르지만, 학교 추첨에 컴퓨터를 활용한 것은 단순한 전산화 차원을 넘어선다. IT를 도구로 사회 전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운영 메커니즘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 생활을 바꾸는 IT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반값 등록금`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비싼 대학 등록금은 우리나라만의 골칫거리가 아니다. 미국 연방 교육부에 따르면 미국 대학 등록금이 지난 2000년 이후 70%, 30년 사이엔 700%나 올랐다. 명문 사립대학은 한 해 등록금만 평균 4만달러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학비가 싸다는 유명 공립대학 등록금도 사립대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 비싼 등록금 문제에 대처하는 미국의 해법은 우리나라와 접근 방식이 다르다. IT를 활용한 크라우드 펀딩과 온라인 교육이 중요한 등록금 해법으로 거론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이 공개한 `MBA 동문회와 크라우드 펀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유럽 등 서구 대학, 특히 경영대학원(MBA)을 중심으로 동문네트워크를 활용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학자금 대출이 학생 사이에서 인기다. 크라우드 펀딩회사가 졸업 동문을 상대로 자금을 마련해 모교 후배에게 저리의 학자금을 대출해 주는 방식이다. 실제로 미국 크라우드 펀딩 대출업체 커몬본드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동창생으로부터 25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회사는 후배 학생에게 최저 5.99%의 고정금리로 대출해주고도 투자자에게 4% 이상의 수익률을 돌려줬다.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등을 활용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조달 비용을 대폭 낮춘 결과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와 플로리다주는 현재 평균 9만달러인 4년간 대학 등록금을 1만달러 이하로 낮추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들이 제시한 등록금 해법은 온라인 교육과 대학 편입이 핵심이다. 우리나라 산업대 또는 과거 개방대에 해당하는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이 정규 대학에 편입하는 길을 더욱 넓히고 대학의 인터넷 강의를 활성화하면 등록금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해진다. IT는 사람들이 골치 아파하며 손을 놓고 있는 문제들을 더욱 쉽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 결국 IT산업의 미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새로운 사회 운영 메커니즘을 만드느냐에 달렸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