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테크노크라트를 키워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을 놓고 온 나라가 들썩인다. 정관계는 물론이고, 민간 이익단체들까지 가세해 과거 어느 정권 교체기보다 심각한 진통을 겪는다. 대통령 취임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해 당사자인 관가 공무원들이 대놓고 반발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통령의 직원인 공무원 조직이 차기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사정이 이쯤 되면 부처간 세부 업무 조정을 둘러싸고 임기 5년내내 여진이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정부 조직 개편안을 만들더라도 논란은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지금은 인수위가 만든 조직 개편안에 문제가 더 많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 조직 개편에 관심이 없다. 피부로 와닿지 않는 이슈일 뿐이다. 정책의 수혜자이자 공무원들에게 녹봉을 주는 국민들이다. 중요한 점은 정부 조직 개편이 공무원 조직에 줄 변화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끼칠 영향이다. 그래서 비록 진통을 겪더라도 바람직한 정부 조직 개편을 위해 치열한 논쟁은 필요하다.

공직 사회를 보자. 당장 정부 부처를 어떻게 바꾸고 누구를 수장에 앉히는지가 공무원들에겐 가장 큰 관심사일 수 있다. 약간 다른 주제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공무원 개인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무원을 키워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공무원의 꿈은 뭐니뭐니해도 명예, 즉 승진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 개발과 집행에 몸 바치며 전문성을 축적한 공무원들은 마지막 염원인 장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관직은 정권의 논공행상이 되기 일쑤였다. 공무원 출신이라도 현 정치인이거나 최소한 정치권과 인연을 맺어야만 장관이 될 수 있는 게 다반사다.

새 정부 각료 인선을 목전에 둔 지금 테크노크라트를 길러야 한다고 새삼 강조하고 싶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테크노크라트는 관료주의에 찌든 정통 관료에 대비되는 기술 관료, 전문 관료다. 지금은 불투명한 대내외 여건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 공무원의 위상과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시점이다. 박 당선인의 화두, 과학기술을 통한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맞아 떨어지는 코드다.

이공계와 기술고시 출신의 공무원만 우대하고 육성하라는 뜻은 아니다. 테크노크라트는 국민 생활과 경제 현장에 발 딛고, 오랜 기간 공직 사회에서 전문성을 배양한 말 그대로 전문 공무원이다. 중국을 G2 경제 대국으로 일군 공산당 지도자들 가운데는 테크노크라트들이 많았다. 상당수가 이공계 출신들이지만, 그들은 인민 생활부터 몸소 챙긴 현장 전문가들이었다.

적어도 박근혜 정권에는 테크노크라트를 길러내고, 이를 인사로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한다. 공직 사회에 자존감과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부 조직 개편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