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새 정부 국민행복은 `사회적 신뢰` 회복부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영화 `트와일라잇`.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배경이 된 미국 시애틀에 머문 적 있다. 두 영화 배경인 알카이비치에서 본 바다 건너 다운타운과 스페이스 니들이 아름다워 부근 레스토랑에 들어가니 미국 사람들이 김치 쿼사디아, 볶음밥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 몇 사람이 우연히 옆에 앉아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는 주차가 두 시간만 되는데 오래 주차했다가 벌금 물었어. 팻말은 봤지만 그동안 위반해도 전혀 문제없었는데!” “동네 도서관에 자주 가는데 책이나 비디오를 빌릴 때 각자 알아서 스캔하고 나와. 지키는 사람도 없으니 몰래 가지고 나와도…” “우리 애 학교는 집에서 플루트 연습한 시간을 부모가 보고하게 하고 성적에 반영해. 주 180분 이상 하면 4점 만점을 주니 처음엔 당연 180분 이상으로 거짓 보고한 적도 있었는데 모두들 이실직고하더군!”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또 다른 아름다운 항구도시 일본 도쿄가 떠오른다. 나는 도쿄에서 토요일 아침에 인근 도시로 출장 간 적이 있는데 주말이라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았다. 휴게소를 지날 때 일행 중 한 명이 “이렇게 막히는데 휴게소로 우회해서 곧바로 고속도로로 다시 나오는 차가 하나도 없네!” 하며 놀란다.

새 정부는 국민행복 10대 공약에 이어 최근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열겠다며 `국민행복`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국민이 행복해질까. 과거에 비해 풍요롭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더 행복 하느냐`는 물음에는 이내 말문이 막힌다. 국민소득 1만달러 이상이면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도 없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우리도 물질적 행복보다는 정신적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가 정신적으로 불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무리 잘살아도 친구, 회사 동료, 거래처, 낯선 시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면 결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다. 앞서 예로 든 미국과 일본이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하고 가정하면 우리 사회의 불신 정도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또 앞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준법 정신, 시민 의식 배양이 절실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첫째,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반 법 규정 준수는 당연하고 나아가 지킬수록 이익이라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민원 등 편의는 최대한 제공받되 위반할 생각은 아예 들지 않도록 제도화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어릴 때부터 관련 교육 병행도 중요하다. 예컨대 내 동기 중 군 미필자가 선후배보다 적은 것은 학창시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유독 강조한 은사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준법정신의 모범이 되도록 유도하는 법 규정 정비가 절실하다.

준법정신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그간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대기업의 욕심, 중견 또는 소프트웨어(SW) 기업의 무책임, 정부의 방관 등으로 SW 생태계는 복원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만시지탄이지만 정부가 공생발전형 SW 생태계 구축을 위해 갖가지 대책을 마련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상호출자 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의 공공 정보화사업 참여 불가에 대한 우려나 반발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오랜 잘못된 관행인 외형 경쟁, 무책임한 유지관리, 덤핑수주 유도 등 SW 생태계의 참여 주체 간 불신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신은 준법정신까지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심각성이 매우 크다.

둘째,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념 갈등을 최소화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예컨대 지난 대선에서 보수와 진보 간 극한 대립을 돌이켜 보자. 목표(즉 지지 이념 또는 후보)만 결정되면 자기 주장의 합리화를 위해 온갖 수단(즉 궤변까지)도 자연스레 동원하는 풍토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상대방 주장을 경청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토론자를 찾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한때 질곡의 역사에서 비롯된 `빨리빨리` 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산업의 원동력이 됐다. 시애틀에서 우리 동포들도 한국인 의사를 선호하는 이유가 `빨리빨리` 진료하면서도 서비스가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는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앞서 미국과 일본 사례에서 보듯 준법정신과 시민의식으로 무장한 `사회적 신뢰` 회복만이 충분조건이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정신적으로 행복해지고 새 정부가 바라는 `국민행복`도 꿈이 아닌 현실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오랜 전통인 선비정신, 양반문화가 그립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