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企業, 起業

장면1. 며칠 전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작정한 듯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월급쟁이 인생의 꽃인 대기업 임원 자리에 올랐지만, 요즘처럼 `일할 맛` 안 난 적이 없다는 게 요지였다. 나라와 자기 그룹을 동일선에 놓고 한눈팔지 않고 달려온 것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너무 야박하다는 설움도 비쳤다. 대기업을 지금 같은 경제·산업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아붙일 때에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던 일생이 송두리째 난도질당하는 수모를 느낀다고 했다.

장면2. 팍팍한 경기에 짧은 설 연휴였지만 차례 상 앞에 전국에서 친척들이 모였다. 직업도 다양할 뿐 아니라, 나이 상관없이 정치적 성향도 제법 다양했다. 자연히 이야기 주제는 `일자리`로 모였다. 작년에 보이던 친척집 젊은이가 한둘 안 보였다. 나이든 사촌, 육촌 형님도 빠졌다. 다 일자리 때문이었다. 그 중엔 대기업 납품업체에 근무하다 일거리가 떨어져 졸지에 실업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고향을 지키며 농사짓고 사는 어르신도 기업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고, 농촌도 없다고 일갈했다.

기업·기업인들의 `자존`이 땅에 떨어졌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를 외치며 들어선 정권의 5년 마지막 10여일에 남은 위신까지 내동댕이쳐졌다.

기업이나 사업은 전쟁처럼 기세에서 승부가 갈린다고 한다. 객관적 전력이 형편없다 해도 싸움을 이끄는 장수나 병사들의 사기가 높으면 의외의 승리를 만들 수 있다. 반면에 아무리 뛰어난 무력과 정예 사병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기가 떨어지면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

연초부터 원화가치 급등, 주요국 수요 부진, 북한 핵 실험 등 대내외 조건은 기업 활동을 사지로 몰았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요인에 의해 기업 경영이 위축받는 국가는 OECD 국가 중 어느 곳도 없다.

사회적 부의 편중, 산업구조 불균형이 초래한 성장 지체 등이 모두 기업의 책임인 양 국민 여론은 호도된다. 국민 여론 뒤에 숨은 정치권은 이를 부추긴다. 어디에도 정책의 실패, 정치의 잘못은 존재하지 않는다.

25일 출범할 박근혜 정부도 여전히 `경제 민주화`란 틀에 갇혀 기업을 본다. 중소기업의 기를 살리고, 일부 대기업으로의 쏠림을 개선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일방적인 대기업 발 묶기로 가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다. 대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곧바로 중소기업의 `일감 부족`으로 이어진다.

이익에 살고, 이익에 죽는다는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익을 꾀하는(企)` 조직이다. 그 행위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뤄진다면, 그것을 욕해서도, 벌을 주어도 안 된다. 이에 속한 직원이 곧 국민이고, 그 기업들의 집합체가 국가기 때문이다. 이들을 `일으켜야(起)` 국력도 경제도 되살아난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