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피로사회

일반적으로 긍정성은 사회의 미덕으로 인식된다. 긍정적인 사고, 성격, 태도…. 특히 후기 근대 성과주의 사회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날 사회는 끊임없는 발전을 요구한다. `당신은 발전해야 합니다`는 강요나 명령이 아닌 `당신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는 교묘한 포장으로 대처해서 말이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나 규제가 지배하던 근대 사회의 주체들은 복종의 대상에서 성과의 주체로 변모했다. 당연히 생산성 향상을 위해 규율 패러다임은 성과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게 된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긍정성의 과잉으로 흐른다. 바야흐로 긍정성이 차고 넘친다.

긍정성의 과잉은 멀티태스킹이란 활동성 과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멀티태스킹은 정보사회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다. 수렵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먹이를 먹는 동물은 경쟁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며, 먹는 중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새끼를 감시하고 짝짓기 대상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보사회에서 찬양받는 멀티태스킹은 어쩌면 퇴화인지도 모른다.

성과사회에서는 스스로를 제 삶의 주인이라 믿고 주체가 되어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신을 자발적으로 소진시킨다. 그리고 완전연소를 향해 나아간다. 인정이나 보상이 아닌 자기에 의한 착취로 야기하는 우울증은 21세기 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일반적인 정신 병리학적 현상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이런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했다.

새 정부가 곧 출범한다. 새 정부가 할 일에 대한 기대와 해야 될 일에 대한 의욕이 쏟아져 나온다. 과학기술을 진흥시키고 일자리를 만들고 중산층을 살리고 비합리적인 옛것을 타파하겠다고 한다. 정보기술을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한다. 복지국가 약속도 빠질 수 없다.

5년이라는 제한된 임기에 긍정성의 과잉이다. 이런 긍정성의 과잉에 우울해지는 것은 성과사회에 사는 개인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조성묵기자 csmo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