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카운트다운 히로시마, `증발한 사람들`

#뜨겁다. 숨이 막힐 듯 한 갈증에도 물은 없었다. 온몸이 타오르는 열기 속에서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군인에겐 수통이 있었지만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화상을 입은 사람에게 물을 줘서는 안된다고 교육받는 군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검게 탄 사람이 허덕이다 숨을 멎을 때까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인데 물이라도 줄 걸 그랬습니다.” 한 군인은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살아남은 사람의 입을 빌려 `히로시마 카운트다운`은 말했다. 모든 것은 `증발`했다고. BBC에서 제작한 드라마 다큐멘터리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도심의 아침 출근길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지옥으로 묘사된 그날 아침은 전쟁을 일찍 마무리 짓기 위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단 3대의 B-29 폭격기였다. 그 중 한 대. 기장인 폴 티베트 대령은 어머니의 이름을 따 `에놀라 게이`란 이름을 붙였다. 부기장인 로버트 루이스 대위가 폭격기 이름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지만 비행기는 하늘로 올랐다. 전쟁에 쓰인 최초의 핵무기 `리틀보이`를 품은 채로 일본을 향했다. 에놀라 게이가 떨어트린 리틀보이는 지면에 닿기 전에 터졌다. 공중에서 터지는 것이 폭발 위력은 더 커진다. 3m 길이의 `어린 아이`는 기폭 장치로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세상의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가 있다. 원자 가운데 존재하는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졌다. 마이너스(-) 성질을 가진 전자는 핵 주변을 돌고 있는 형태다. 핵폭탄에 들어가는 원료인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아 핵과 충돌할 때 핵분열이 일어난다. 중성자가 우라늄 235에 들어가면 원자핵이 두 개로 쪼개지면서 열에너지를 방출한다.

한 개 원자가 분열할 때는 강한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핵분열이 일어날 때 발생하는 에너지와 함께 2~3개의 중성자도 함께 나온다. 이 중성자가 인접한 핵에 다시 충돌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 핵 폭탄의 원리다. 리틀보이 위력은 13킬로톤(kt)이다. 방출되는 에너지를 화약으로 환산했을 때 다이너마이트 1만3000톤을 동시에 터트린 위력이다. 실감나지 않지만 당시 히로시마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느꼈던 온도는 대략 4000도라고 한다.

“괴 생명체가 나타났다. 사람이라면 흰옷을 입었을 텐데 온통 숯처럼 까맸다. 사람 몸통 같은 것이 있긴 했지만 양쪽 눈은 크게 튀어나왔고 코도 없었다. 사람인 건 알고 맥박을 재려고 하는데 살갗이 없었다. 어느 한군데 잡을 곳이 없었다. 포기하고 일어서서 `기운내`란 말만 했다.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다음엔 안 움직였다. 그렇게 죽었다. 3km를 도망쳐 나와 그렇게 죽었다. 내가 본 첫 번째 희생자였다.”

히로시마 외곽마을에 진료 중이었던 순타로 히다 박사는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검은 버섯 구름을 봤다. 곧 충격파가 몰려와 벽에 부딪혔다. 핵폭탄이 터지면 에너지 방출과 함께 중앙 부분이 진공상태가 돼 주변 공기를 급속도로 빨아들인다. 퍼지는 충격과 함께 당겨지는 충격이 이중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히다 박사가 히로시마로 향하면서 처음 본 사람은 인간이 아닌 원폭 희생자란 `숯`이었다.

히다 박사가 본 희생자를 포함해 1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리틀보이가 히로시마를 불바다로 만드는 날, 도쿄에서는 최고전쟁지도회의가 열렸다. 당시 아나미 육군 장관은 “최후의 일전을 치르면 된다”며 “300만명의 군인이 희생될 준비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불에 타며 물을 달라고 절규하는 국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리틀보이가 히로시마를 지옥으로 만든 후, 비가 내렸다. 도시를 뒤덮고 있던 구름 속에서 검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모두 입을 벌리고 그 비를 마셨다. 다들 목이 말랐지만 빗방울을 마시가 쉽지 않았다”고 생존자는 말했다. 검은 비는 재와 연기로 만들어진 구름에서 쏟아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비가 방사능에 오염됐단 것을 알지 못한 채 입을 벌렸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