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는 중국 역사상 최강의 무장이었다. 3만명의 정예 기병으로 60만에 이르는 유방군을 괴멸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지닌 항우도 결국 유방(乳房)에게 천하를 내주고 말았다. 투항한 적군 20만명을 살육해 버릴 정도로 성질이 과격하고 자만심이 강해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한 때문이었다.
반대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유방은 지략이 부족하고 무예도 출중하지 않았지만 인재를 알아보고 포용한 덕분에 휘하에 유능한 신하를 많이 거느릴 수 있었고, 결국 천하를 얻었다.
한신(韓信)이 대표적인 예다. 항우는 책사 범증(范增)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한신을 업신여겨 중용하지 않았다. 결국 항우를 떠나 유방의 대장군이 된 한신은 뛰어난 지략과 전술로 항우를 제압한다. 항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로 내 몬 것도 한신의 전략이었다.
또 한명의 인재가 경기도를 떠난다. 지난 6년간 경기도 과학기술정책 기반을 닦아온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이 이달 말 물러난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을 설립하고, 기술개발사업을 정착시키는 등 경기도 과학기술정책 전반을 지휘해 온 주인공이라 아쉬움이 크다.
그의 사임으로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한국나노기술원, 경기과학기술진흥원 등 도내 주요 IT·과학 분야 기관장이 모두 바뀌게 됐다. 물론 앞서 사임한 기관장들과 경우가 다르다. 경기콘텐츠진흥원장과 한국나노기술원장이 텃세에 쫓겨나는 듯한 모양새였다면 이번엔 본인이 스스로 물러난다. 건강 악화가 이유라 도지사도 더이상 붙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별반 다를 게 없다. 수년째 반복된 예산삭감과 보이지 않는 압력에 그는 이미 지친 상태였다. 더이상 열정을 펼칠 수 없는 꽉 막힌 환경이 그를 칭병(稱病)케 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한명의 인재가 아쉬운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큰 손실이다. 지금 경기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재가 머물 수 있는 분위기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