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283>쓰면 쓰임이 달라진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보면 글 쓰는 사람의 비장한 각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오로지 앎이 끝나는 최전방의 지점에 도래할 때이다. 글쓰기는 앎과 무지를 가르고 또한 앎과 무지가 서로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는 그 극단의 지점에서만 시작된다. 글을 쓰고자 결심하게 되는 것은 오직 이런 길을 통해서다`(들뢰즈, 차이와 반복).

뭔가를 알아서 글을 쓰기도 하지만 글을 쓰다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거나 알고 있는 사실도 하나의 연결망이나 구조로 포착되지 않다가 글을 쓰면서 이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체험적 소산이 나름의 구조와 체계로 엮인다. 내 삶의 모토 중의 하나가 `쓰지 않으면 쓰러진다`라고 했더니 `탁구영의 책 한권 쓰기` 등 30여권의 베스트셀러 저자, 조관일 박사는 `쓰면 쓰임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렇다. 무조건 써야 글을 쓰는 사람은 물론 글로 작성되기 이전의 수많은 아이디어도 쓰임이 달라진다. 머리로 생각하는 희미한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자꾸 머릿속에서 꺼내어 글로 옮겨야 한다. 보잘 것 없는 생각도 하얀 백지위에 흔적을 남겨놓으면 비록 처음에는 얼룩으로 보이지만 자꾸 다듬어서 고치고 보완하면 얼룩에서 무늬가 보이기 시작한다. 글은 얼룩으로 보였던 흔적이 글 쓰는 사람의 집요한 탈고작업을 통해 아름다운 무늬로 탄생하는 것이다.

글쓰기 과정은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축적된 체험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지금 현재 심리 상태를 포착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디지털 세상의 만개와 함께 피는 인터넷에 쓰이는 글에는 압축과 절제미가 사라지고 배설과 적나라함이 도배라도 하듯이 판을 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말에 완곡함이 사라지고 글에서 행간이 증발한다...말하는 본새와 글 쓰는 품새에 간을 맞추지 않으니 곱씹을 맛도 없다. 음미와 상상이 봉쇄된 말글에서 목도하는 것은 파시즘과 광증이다.` 손철주의 `꽃 피는 삶에 홀리다`에 나오는 말이다. 글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그리움이 농축되어 읽는 사람도 함께 그리움에 사무치게 되는 것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