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정식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는 우리나라를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다시 부활시키겠다고 공언했다. ICT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로 새로운 도약을 선언했다. 창조경제를 이끌 미래창조과학부도 신설했다.
지난 5년 ICT와 과학기술이 홀대받으면서 추락한 우리나라 산업경쟁력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클 수 있다. 최근 미래부 세부조직 확정과정에서 창조경제를 추진할 전담부처가 `용두사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5년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성공하려면 어떤 ICT 정책이 수립되고 추진돼야 할까.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전자신문은 미래강국전국연합과 공동으로 주요 ICT 학회장이 참여한 `박근혜 정부 ICT 정책 방향 좌담회`를 개최했다.
◇참석자(가나다 순)
고성제 대한전자공학회장(고려대 교수)
김명준 한국정보과학회장(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위원)
김형중 미래강국전국연합 상임대표(고려대 교수)
이재용 한국통신학회장(연세대 교수)
정대권 한국방송공학회장(한국항공대 교수)
사회=장지영 전자신문 통신방송산업부장
◇사회(장지영 전자신문 통신방송산업부장)=새 정부 ICT 정책 방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지난 5년의 정책 평가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지난 5년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ICT정책이 홀대받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정대권 한국방송공학회장(한국항공대학교 교수)=예전의 CDMA 기술을 봐도, 현재의 스마트폰, TV를 봐도 우리나라 산업을 받치고 있는 건 여전히 ICT다. 전담부처를 폐지한 것은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한 수로 보인다. ICT 분야에 체계적인 정책이 없는 것은 그 결과다. 그나마 기업들 중심으로 트렌드를 읽고 연구개발에 힘을 썼기에 금융위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즉 정책 지원은 부실했고, 기업은 분발했다.
◇이재용 한국통신학회장(연세대학교 교수)=5년전, 방송과 통신의 경계를 허물 필요는 분명히 있었다. 타 산업과 ICT가 융합돼야 할 필요성도 높았다.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옳았던 것이다. 문제는 ICT가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면 ICT 자체의 발전이 핵심 경쟁력인데, 이걸 못했다. ICT 기반 경쟁력도 키우면서 타 산업과 융합도 추진해야 했다. 너무 융합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ICT 기반 기술이나 산업경쟁력이 떨어졌다. 특히 이른바 CPND 융합에 대해 예측을 못했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니 올바른 정책을 펼치기 어려웠다.
◇사회=지난 정부에서 ICT를 `공기`처럼 필수적인 요소라고 여기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ICT 선도 기술 개발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명준 한국정보과학회장(ETRI 연구위원)=보통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국가출연연구소는 숙제를 받는다. 선도 기술은 장기적인 원천기술 개발이 기반이 돼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산업적으로 수익을 내면서도 원천기술을 개발하라는 기조였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숙제였는데, 쉽지 않았다.
◇정대권=실제로 평가를 다니다 보면 그런 문제를 접하게 된다. 원천기술 개발보다 융합을 통해 실제 응용되는 기술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대부분 중·장기적인 연구가 아닌, 단기 효과를 내는 연구들이다.
◇사회=이제 새 정부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창조경제라는 키워드에는 당선인의 고민이 많이 녹아 든 듯 보인다. 벤처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핵심 키워드다.
◇고성제 대한전자공학회장(고려대학교 교수)=2000년대 초반 벤처붐을 돌이켜보면 흥망이 교차했고, 장단점도 있었다. 돈을 퍼다 주는 예전의 지원 방식에서 나아가, 국가와 대기업이 합심해 벤처를 육성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이재용=위키피디아는 벤처를 고도의 전문인력과 창조적인 재능의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연구개발형 신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대로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인재다. 사람을 키우는 여건을 정부가 만드는 것이 첫 번째인데, 이공계에선 연구를 하면서 사람이 키워진다. 결국 R&D 투자를 많이 해야 된다. 우리나라 R&D 투자 규모는 공공 16조원, 민간 40조원 정도인데, 미국이나 일본의 1인당 투자액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기술평가제도와 벤처캐피탈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명준=벤처창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목적은 지식사회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지식사회로 진화하기 위해선 산업지식재산, 즉 특허와 저작권이라는 두 기둥이 필요하다. 이 지식사회 속에서 벤처도 하나의 중요한 축이 돼야 한다.
◇사회=창조경제라는 용어 자체는 두루뭉술하다. 구체적으로 ICT 분야에선 무엇을 해야 할까.
◇이재용=무엇을 위한 창조경제인가.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 향상이다. 또 하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강소기업을 만들어 경제구조를 건전화·다양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ICT분야에서 미래의 위협이 뭔지를 예측하고, 거기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복지·환경 등 삶의 질과 중기 경쟁력에 필수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ICT의 역할도 거기에 있다.
◇김형중 미래IT강국전국연합 상임대표(고려대 교수)=한국이 스마트 시대에 이제 어느 정도 앞서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이 절대 뒤처지면 안 된다. ICT 기술을 접목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융합 프로젝트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고성제=앞으로 우리의 삶을 대신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사람 대신 보고 듣는 기능을 빠르게 흡수할 것이다. 인지과학이다. 구글이 한창 개발에 열을 올리는 무인자동차도 인지과학이 기반이다. 이 분야 소프트웨어 역량의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개인 사례를 들면, 집과 학교를 20년째 출퇴근하는데, 아침마다 시동걸고 같은 길을 운전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런 반복을 제거하고 삶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 크게 각광받을 전망이다. 많은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
◇김형중=인지과학과 관련해, 컴퓨터가 아직 사람보다 훨씬 못하는 게 패턴인식이다. 이런 블루오션 연구분야를 치고 나가야 한다. 또 플랫폼 개발은 항상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김명준=이제 우리나라도 글로벌 운용체계(OS) 하나쯤 만들 수 있다. 27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만든다고 했을 때 아무도 안 믿었다. 지금은 훌륭한 국내 제품이 꽤 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역사를 보면, 글로벌하게 널리 쓰이는 소프트웨어도 처음에는 150명 정도 규모로 시작했더라. 우리나라도 그 정도 조직을 갖추는 환경이 되면 된다.
◇이재용=연구 체계를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자리 창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선 미래 위협 분야를 해결하는 국책프로젝트가 제일인데,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글로벌인더스트리 프로젝트, GIP라고 명명해 본다. 이를테면 의료 GIP, 국방 GIP 등이다. 프로젝트가 연구에서 끝나지 않고 자연스레 살이 붙어 산업이 되는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정대권=기획에서부터 상용화, 적용까지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대형 국책프로젝트가 투입 자금 규모만 대형이 아니라, 그만큼 체계적이고, 마지막 단계까지 가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김명준=강하게 동의한다. 사례를 들면, 기가코리아 프로젝트가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제대로 유지되면 좋겠다. 지식사회로 넘어가기 위한 교두보와 같은 인프라를 만드는 사업이다. 이런 사업들이 좋은 결과를 내려면, 5년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 보다 장기적으로 봤으면 좋겠다.
가령 KTX를 보면, 3대 대통령에 걸쳐서 하는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국민의 발이 되고,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묶었다. 장기투자의 결과는 이런 것이다. ICT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대형 과제는 기안할 때부터 `몇 대 정권에 걸쳐서 할 것이며, 이번 정권에는 어느 단계까지 완성하겠다`는 식으로 하면 어떨까.
◇고성제=스마트 다음도 준비해야 한다. 그 다음은 인텔리전트다. 스마트카에서 진보한 인텔리전트카, 스마트TV보다 더 지능화된 인텔리전트 TV 등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모빌아이라는 회사가 있다. 차선 이탈, 전방 보행자 위협 등을 인식하는 기술을 가진 회사로, 벤처로 시작해 조만간 매출이 1조원에 육박할 예정이다. 이런 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
◇사회=ICT 거버넌스 논의로 넘어가보자. 규제는 산업 진흥의 수단이면서도 잘못 할 경우 산업을 죽이기도 한다. 차기 정부에 미뤄놓은 이슈가 많다.
◇이재용=규제의 원칙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CPND 생태계가 대두되면서 평등과 경쟁의 상충이 빈번해졌다. 보수적인 규제의 틀은 결국 경쟁을 옭아매는데, 이 때는 사업자 간 윤리 의식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부족했다. 오랜 의견수렴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 가이드라인이 윤리가 되는 전통 확립이 필요하다.
◇정대권=특정 사업자나 분야를 위한 것이 아닌, 실제 지식사회, 스마트사회로 가기 위한 규제가 돼야 한다. 이슈가 되는 주파수도 마찬가지다. 스마트 사회로 가기 위해서 적합한 분배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김명준=정책 이행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정부보다는 개인보호, 변화 속에서도 전통문화 계승, 히든 챔피언이 나올 수 있는 산업구조. 이 3개의 상위 논리를 대통령이 강조하고, 개별 부처가 이런 원칙을 지키는지 평가해야 한다.
◇사회=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해 제 2의 교육과학기술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과학기술과 ICT 전담이 한지붕 두가족으로 지내는 것이다. 또, 산업통상자원부, 안전행정부 등과 충돌 우려도 있다.
◇김명준=미래부가 하나의 산업분야를 담당하면 이익집단을 대표하는 부서로서 문제를 표출할 수 있다. 따라서 ICT를 단순히 육성하는 게 아니라 타 산업과 융합할 수 있도록 하는 부처가 돼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지식재산이 중요하다. 미래부는 ICT 지식재산을 관장하며 타 산업과 동반 발전을 이끄는 부처가 돼야 한다.
◇김형중=정치적 색채를 배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논란은 매우 정치적이다. 정치에 휩쓸리면 과학기술과 ICT가 발전하기 힘들다.
◇정대권=과학기술과 ICT를 한데 묶어놓은 것에 대해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장관 입장에서 적절한 균형 맞추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차관들이 경쟁할지도 모른다. 장관이 부처 내 조정을 잘 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이재용=아무리 기능을 잘 분배해도 부처 간, 혹은 부처 내 경쟁과 일부 갈등은 있을 수 있다. 이를 총괄 조정하는 협의체 구성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경쟁을 긍정적으로 살리는 것도 선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방안으로 보인다. 출범 직전인 차기 정부가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
정리=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