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프리미엄급 아이패드 미니 개발에 착수한 것은 시장 변화에 그 만큼 유연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패드 미니는 당초 중저가 스마트패드 시장을 타깃으로 내놨지만, 예상과 달리 아이패드 수요를 잠식했다. 삼성전자의 다모델, 물량 경쟁 전략을 좇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 LG디스플레이·재팬디스플레이·샤프는 애플의 요구에 맞춰 9.7인치 생산물량을 줄이고, 7.85인치 LCD 비중을 늘렸다. 팀쿡 애플 CEO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잠식 효과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팀쿡은 애플 CEO 부임 이후 스피드와 시장 점유율을 유독 강조했다. 애플은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높은 제품 완성도를 기반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폰 기술이 상향 평준화됐다. 완성도보다 빠른 속도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애플은 고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여전히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지만, 속도 경쟁에 뒤져 삼성전자에 고전한다. 중저가 시장에선 ZTE·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약진한다.
시장 점유율 둔화는 애플에 치명적이다. 애플은 기기 판매 못지않게 어플·음원 등 유통 사업 비중이 높은 회사다. 시장 점유율이 하락세로 접어들면 경쟁사보다 충격이 배가된다.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저가 아이폰 등 제품 라인업을 강화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는 이유다.
팀쿡 체제 이후 애플은 상당한 변신을 단행했다. 신제품 개발 속도는 높아졌다. 시장 점유율도 안정적이다. 반면 제품 완성도는 낮아졌다. 아이폰·아이패드엔 스티브 잡스가 고안한 휴먼 인터페이스 노하우가 담겼다. 아이폰이 3.5인치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것은 여성도 한 손으로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는 책 사이즈와 같은 9.7인치를 채택했다. 가독성과 가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애플 협력사군 변화도 불가피하다. 애플 거래의 가장 큰 장점은 예측 가능성이었다. 일년에 단 2개 신제품만 출시해 후방 협력사들은 안정적인 거래가 가능했다. 투자 위험 및 재고 부담도 적었다. 그러나 애플의 전방 시장 전략 변화로 협력사들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 라인업이 강화되면 연구개발 비중이 커지고, 협력사 풀도 확대돼야 한다”며 “제조 경험이 적은 애플이 최근 비대해진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