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국적 논쟁 도 넘었다

이쯤이면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 미래부 장관 후보를 둘러싼 국적 논쟁이 흠집내기 수준을 넘어섰다. 냉정해야 할 인사검증론이 너무 정략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야당의 염려를 이해하지만 공약까지 뒤집으면서 펼치는 구시대적 정략적 공세는 수권 정당의 기치를 의심하게 만든다. 이미 지난 총선과 대선의 패착만 더 부각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승정의 어울통신]국적 논쟁 도 넘었다

미래부 장관 후보를 비판하는 내용은 이렇다. 외국인으로 살아온 김종훈씨가 일국의 국무위원이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나라의 기밀과 기술을 누출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모국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타국으로 이민을 가 자수성가 과정에서 있을 수도 있는 `미국을 조국으로 지칭했다`는 수사적 얘기도 끄집어냈다. 미 해군 근무 이력도 문제 삼았다.

정말 그럴까. 역으로 생각해 보자. 그는 미 해군 핵잠수함에서 7년여를 근무해서 군을 매우 잘 안다. 미국이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통신기술도 꿰뚫는다.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연구소인 벨연구소 사장도 거쳤다. CIA 관계사 자문도 했다. 미국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야당은 기밀유출이 걱정이라고 한다. 과연 현실을 제대로 알기는 한 걸까. 과학기술 부문에서 우리는 미국에 10년 혹은 20년 이상 뒤처졌다. 오히려 미국 측이 군 핵심 노하우와 최첨단 기술의 유출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미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가 안보 역시 마찬가지다. 기우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미국의 400대 갑부에 오르내릴 만큼 성공한 그가 무엇이 모자라 1000억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국적 포기 비용을 감수하면서 모국의 장관이 되려 할까.

중국을 보자. 중국은 과교흥국(科敎興國)의 기치를 앞세워 과학기술 입국을 주창했다. 사람이 핵심임은 물론이다. 오죽하면 과학자 첸쉐썬(錢學森)을 놓고 미국과 세기의 대결을 벌였을까. 첸쉐썬은 캘리포니아대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로켓제트 추진 분야의 전문가다. 미 국방과학위원회 미사일팀장, 독일 미사일기지 조사위원장 등 핵심 역할을 했다.

중국은 미국과 5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그를 불러들였다. 15년 뒤 중국은 양탄일성(兩彈一星)의 목표를 달성했다. 원자탄, 수소탄,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초나라 사람인 이사(李斯)는 진나라에서 외국인에게 주는 가장 높은 벼슬인 객경(客卿)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다른 객경 중 한 사람이 왕을 속여 자신의 모국을 이롭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외국인을 모두 내쫓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사는 진왕에게 “태산은 한 줌의 흙이라도 사양하지 않아 그렇게 높은 것이며, 하해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아 그렇게 깊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나라에서 나지 않은 물건 중에 좋은 것이 많고, 이 나라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충성하려는 인재도 많습니다. 그들을 내치면 적국을 이롭게 하고 뒤늦게 나라를 구하려 해도 늦습니다”라고 진언을 했다. 이른바 간축객서(諫逐客書)다. 후일의 진시황인 진왕은 그의 말을 듣고 능력만 있다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중용해 중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인재를 중히 여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재를 널리 구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글로벌 강국은 먼 나라 얘기가 된다. 장관 후보자의 전문성·도덕성·국가관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김종훈 씨가 미국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하기 위해 현실에 충실했던 것이라면 그의 이력은 결격사유가 안 된다. 외국인은 안 된다는 편협한 사고에 갇혀 그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