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창업국가코리아, 문제는 인수합병(M&A) 활성화다.

13년 전 GM, 앤더슨컨설팅(현 액센츄어), 실리콘그래픽스 등 미국 대기업 출신의 서른 살 전후 4명이 미국에서 벤처기업을 세웠다. 이 가운데에는 나도 있었다. 회사는 위성영상·공간정보·웹을 이용해 임업·농업·에너지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현물 투자·제지회사 등에 관련 정보를 판매하는 게 사업 모델이었다. 창업 당시 일주일 만에 현지에서 100만달러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자금이 소진된 2001년에는 폐업 위기도 겪었고, CEO와 회사명이 바뀌는 격랑을 겪기도 했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2011년 8월 세계 2위 미디어 정보업체인 톰슨로이터에 인수됐다. 나름의 성공스토리다.

[ET단상]창업국가코리아, 문제는 인수합병(M&A) 활성화다.

미국은 기술창업 천국이다. 기술 창업과 관련한 다양한 법률, 회계, 총무, IT, 인사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큐베이팅 회사부터 초기 창업자금을 대는 엔젤투자 회사, 자리잡은 회사를 지원해서 상장 또는 인수합병(M&A)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벤처캐피털까지 다양한 창업투자회사가 활동한다. 덕분에 창업자는 좋은 아이템만 있다면 지원 조직을 도처에서 구할 수 있다.

창업 8년 만에 1000억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상장한 페이스북, 1998년 창업 후 2004년 230억달러 규모로 상장한 구글 등이 이런 기술창업 생태계 속에서 태어났다. 기술창업 생태계 동력은 중소기업 대상의 인수합병 시장에서 나온다. 미국에는 상장까지 기다리지 않고 M&A로 단기간에 투자액 회수가 가능한 역동적 시장이 존재한다.

구글은 2011년 한 해에만 26개 회사를 인수했다. 페이스북은 11개 회사를 인수했다. 시스코는 1993년 이래 20여년간 평균 5억달러 가격으로 150여개 회사를 인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같은 기간 150여개 회사를 인수했다. 미국 대기업은 매년 수십 개의 회사를 경쟁적으로 인수하면서 새로이 대두되는 기술과 인력을 흡수해 활력을 얻는다. 사회 전반에는 창업으로 새로운 것,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면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신호가 깔려 있다. 창의적인 젊은이들이 몸을 던져 승부를 거는 이유다.

M&A 활성화는 국내 사회, 경제, 교육 문제 해결과 그 궤를 같이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존중해야 가능한 M&A 활성화는 수직적 사고에서 수평적 사고로 전환을 가능케 한다. 미래 일자리 창출의 한 가지 열쇠는 축적된 자본이 재투자로 연결되는 건실한 자본 흐름 속에서, 수평적인 사고로 무장한 창의적인 인재가 창업으로 새로운 산업을 선점해 나가는 데 있다. 창의적 인재교육이 빛을 발하려면 그들 인재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사회, 취업이 아닌 창업으로 에너지 발산이 가능한 사회, 그런 에너지가 순환할 수 있는 M&A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이공계의 위기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과 M&A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술자가 많아지면 저절로 해결된다. 창업투자회사가 이를 기반으로 큰 순수익을 만들어낼 때 갈 곳 잃은 자본이 몰려다니며 만들어내는 부동산·주식 거품 같은 부정적 현상이 감소될 수 있다.

정부는 매칭자금을 지원하는 엔젤투자 전문회사를 선정하고 있다. `청년창업` 관련 교육도 강화했다. 언론에서는 청년창업이 청년실업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창업국가` `청년창업 지원` `창업교육 확대` `엔젤펀딩 확대` 모두 좋은 시도다. 하지만 핵심이 빠져 있다. `창업을 왜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창업으로 어떻게 경제적 보상을 얻는지의 답변이기도 하다. 나는 M&A 활성화가 현실적이며 가장 매력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마치 창업이라는 집 안에 온기를 돌게 하기 위해 굴뚝이 꽉 막힌 줄도 모르고 아궁이에서 열심히 부채질하며 군불을 때고 있는 형국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허준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jheo@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