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링컨의 설득리더십

에이브러햄 링컨의 인생 중 가장 극적인 시기는 언제였을까? 게티즈버그 연설 혹은 남북전쟁 승리, 포드극장에서의 최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링컨`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헌법 13조 수정안을 놓고 의회와 공방전을 벌인 넉 달을 주목했다.

남북전쟁 막바지. 기진맥진한 남부군은 평화 제의를 한다. 링컨은 고민에 빠진다. 제의를 받아들이면 그간 노예제 폐지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수정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공화당이 똘똘 뭉쳐도 무려 20표나 모자란다. 의회 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보수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내부조차 생각이 엇갈린다. 내전을 끝내고 꽃다운 젊은이들의 목숨을 구할 것인가, 노예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희생을 치를 것인가.

결단의 순간, 우리가 잘 몰랐던 링컨의 진면목이 빛을 발한다. 때론 유머로, 때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단 병사와 소통하고 대척점에 섰던 반대파들을 설득한다. 심지어 법안에 반대하던 민주당 의원 집을 홀로 찾아간다. “의견이 다른 이들을 모으려면 그들이 결심할 때까지 느리게 가야한다”고 말하며….

영화를 보며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분명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위기에 취약하다. 훌륭한 지도자와 정당제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이 안 될 때가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들 사이의 감정적 상처는 더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고 느린 변화라도 받아들이고, 경우에 따라선 차악이라도 기꺼이 선택하는 것이 민주정치다. 이런 갈등과 합의 속에서, 느리지만 좀 더 오래가는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150년 전 링컨의 `민낯`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분명한 것은 국무장관에 임명한 정치적 라이벌의 말에도 귀를 열었다는 점이다. 목표는 뚜렷했다. 그냥 내달리지 않았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은 양보했다. 신념을 지키되 통합을 중시했던 `링컨`을 보며 한국 정치와 지도자를 다시 생각한다.

김인기 편집1부장 i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