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세계의 법칙에 의해서 계산되거나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다.” `사랑예찬`이란 책을 썼던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남긴 말이다. 바디우는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해 사랑의 과정은 모든 법칙을 파괴한다고 했다. 우연성과 비법칙성이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사랑에는 대상이 존재한다. 비단 이성(異性)뿐 아니다. 사랑의 대상은 자기 자신, 일, 신, 가족 등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자기를 둘러싼 어떤 세상도 사랑할 수 있다.
![[과학, 문화로 읽다]사랑예찬, 초콜릿 예찬](https://img.etnews.com/photonews/1303/399820_20130307182223_411_0001.jpg)
사랑의 시작은 만남이다. 누구는 소개팅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누구는 편지로, 최근에는 모바일 세상에서도 사랑하는 이와 만난다. 술에 힘을 빌려 수줍은 고백을 할 때도 `만남`을 전제로 시작되는 것이 사랑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속 작은 소녀 `파이프`가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세상과 만남을 이끈 것은 벨기에산 화이트 초콜릿이었다.
`먹는 것, 이건 냄새가 난다. 희끄무레한 막대기에서는 신(파이프)이 모르는 냄새가 난다. 비누나 포마드보다 좋은 냄새다. 신은 한편으로는 겁이 나면서도 욕구가 생긴다. 혐오감으로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욕망으로 침을 흘린다.…내가 태어난 것 바로 그때였다. 1970년 2월, 간사이 고산 지애에 있는 슈쿠가와에서, 두 살 반의 나이에 친할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이트 초콜릿의 은총으로 태어났다.`
초콜릿과 만남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줬다. 그러나 사실 초콜릿은 `눈을 멀게`하는 존재하다. 한 여자가 초콜릿을 먹는다. 딱 부러져 입안에 들어오면 금방 녹아내려 달콤함이 퍼진다.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 순간은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하다.
기분의 원천은 페닐에틸아민이다. 초콜릿에 포함된 300여개 화학물질 중 하나다. 좋아하는 이성을 보거나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할 때 설렘.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때 분비되는 물질이다. 100g 초콜릿 안에는 약 50~100mg 정도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페닐에틸아민이 뇌에 흡수되면 혈당이 올라가고 혈압이 상승한다. 마치 짝사랑하는 이성을 만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심장이 뛴다. `쾌락 호르몬` `뇌 안의 마약`이라고 부르는 도파민이 활성화 되도록 도와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든다. 행복한 기분에 휩싸여 사랑에 빠진 듯하다.
소설 속 파이프는 “나, 만세! 내가 만들고, 내가 느끼는 쾌감만큼이나 나는 대단해! 내가 없으면 이 초콜릿은 아무것도 아닌 덩어리에 불과해. 하지만 내 입속으로 들어가면, 그건 쾌락이 되거든. 초콜릿은 내가 필요해”라며 나르시시즘적 감탄을 터트렸다. 초콜릿을 먹으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너무 기뻐서 다리를 흔들었다. 모든 흔적이 기록된 내 뇌의 연질 어딘가에, 뭔가 새겨진 느낌이 들었다.`고 묘사할 때 그녀의 뇌 속엔 페닐에틸아민 작용으로 심장이 뛰고 도파민이 흘러나와 쾌락을 느끼고 있을 터다.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가 만든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마시면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사랑의 묘약이 등장한다. 초콜릿에 포함된 페닐에틸아민도 충분히 사랑의 묘약이 될 자격을 갖췄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다량의 페닐에틸아민이 작용하면 과민반응을 일으키거나 뇌혈관을 조여 편두통이 일어날 수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져 페닐에틸아민가 분비되는 시간은 3개월이라고 한다. 길어야 3년을 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삶을 살면서 `예측할 수 없는 파괴적 사건`이 단순히 화학물질에 달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가슴 뜨거운, 열정적인 사랑만 사랑은 아니다. 서로 이해와 신뢰가 쌓아 올리는 사랑도 분명 존재한다. 감각에만 묶인 쾌락을 탐닉하는 것은 에로스(Eros)에 한정된 사랑으로 범위가 좁다. 넓은 사랑을 위해 지금 당신이 그리는 사람에게 전화 한통,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가족을 위해 꽃 한 다발을 안고 귀가해도 좋다. 작은 초콜릿 조각이 아니라도 사랑을 이끌고 오는 수단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ps.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은 초콜릿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