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미래부와 방통위, 진흥과 규제 분리의 함정

오병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indoh@yonsei.ac.kr

우리나라에서 5년마다 반복적으로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표현 중 하나가 `새 술은 새 부대에`다. 2013년 새 봄을 맞이하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새 술은 이미 빚어 놓았는데 이를 담을 새 부대를 손에 넣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점이다. 이러다가 공들여 담근 새 술을 부대에 넣어보지도 못한 채 외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ET단상]미래부와 방통위, 진흥과 규제 분리의 함정

현재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업무 중에서 진흥업무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로, 규제업무는 방통위에 남기는 것이 새 부대의 설계도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업무 중에서 과연 `진흥`과 `규제`가 그렇게 일도양단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주요 관심사에 밀려 언론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는 진흥업무라 미래부가 담당하고 정보통신망에서의 개인정보보호는 규제업무라 방통위가 관장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이 대표적 사례다.

만약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고 유출시 처벌하거나 제재를 가해야하기 때문이 이를 규제업무라고 본다면 근시안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정보보호나 정보보안이 규제업무라고 한다면 미국의 `사이버 보안 연구 및 개발법(Cyber Security Research and Development Act)`처럼 개인정보보호나 정보보안 기술의 연구개발이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도 규제가 되는 것인가?

최근 이슈로 대두된 빅데이터, 위치기반서비스 등은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같은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를 단순히 규제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개인정보의 활용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어 국민의 소중한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해야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은 정보는 동의 한도 내에서는 산업발전을 위해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는 해외 글로벌 ICT 기업이 개인정보의 분석과 활용을 통해 창의적 서비스를 제공해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자명하다.

구글은 이용자들의 검색어, 클릭 정보를 수집해 제공하는 맞춤형 광고로 연간 3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 온라인 서점이었던 아마존은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구매이력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으로 전자상거래 전반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로 진화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분산된 개인정보 관리체계를 재편해 국민의 혼란을 줄이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과 실효성을 제고해야할 때다.

개인정보의 활용과 분석이 가능하도록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 벤처기업 육성 등에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빅데이터·클라우드컴퓨팅·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대해서도 선제적 대응해야한다. 그래야 보호와 산업 발전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미래창조경제의 핵심자산인 개인정보를 규제 시각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한다. 자칫 `갈라파고스식 규제`라는 비판을 받았던 스마트폰 도입 지연 사례를 반복할 수 있다.

개인정보는 보호받아야 할 가치임과 동시에 미래 창조경제를 위한 핵심 자산이라는 점에서 진흥과 규제를 모두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진흥이라고 해서 당근만 주는 것도 아니고, 규제라고 해서 늘 채찍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정책은 피할 수 없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명백한 진흥도, 완전한 규제도 있을 수 없다.

새 술을 빚어 새 날을 맞이했고 머지않아 얼어붙은 땅에도 봄기운이 솟아올라야만 한다. 설익은 진흥과 규제의 이분법적인 틀로 더 깊은 혼란으로 빠지게 하는 것은 결코 새 술을 위한 바람직한 새 부대의 모습은 아니다. 정보통신 분야의 규제는 발전과 진흥을 위해 유효한 네거티브한 수단이지 오로지 채찍질만을 위한 규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말은 달리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으라고 때리는 것이 아님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