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기획]<3>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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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소셜 네트워크가 탄생했다. `미니홈피`로 전국을 싸이질에 빠지게 한 싸이월드와 옛 동창 찾기 열풍을 일으킨 `아이러브스쿨`이 이때 설립됐다. 모두 KAIST 출신이 주축이다.

`소셜`에 중점을 둔 서비스는 1997년을 전후해 미국에서도 나왔지만, 소셜 네트워크가 누구나 이용하는 보편 서비스가 될 수 있음을 처음 보여준 것은 한국 싸이월드였다. 1999년 인맥 기반 커뮤니티로 출발한 싸이월드는 2001년 미니홈피를 내놓으며 주목받았고,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된 후 2007년까지 초고속 성장했다.

회원은 2700만명, 미니홈피 등록 사진 100억장에 이르는 `국민 인터넷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일촌 파도타기와 가상재화 `도토리`를 이용한 디지털 아이템 판매 등 획기적 모델을 제시했으나, 정작 세계에 SNS 열풍이 불 무렵 싸이월드는 침체에 빠졌다. 싸이월드 성공과 실패 포인트를 짚어보며 우리나라 SNS의 성공 방정식을 그려본다.

◇성공 포인트

싸이월드는 어떻게 세계 최초의 성공한 SNS가 됐나?

1. 개인을 드러내는 프로필 기반 네트워크

싸이월드는 `자기`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였다. 온라인에서 자기 정체성을 내걸고 실제 지인과 네트워킹하는 서비스로는 처음 등장했다. 2000년대 초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기존 PC통신 커뮤니티가 인터넷에 흡수되고 다음 `카페`가 한창 성장하던 때다.

카페나 동호회 속 개인은 실제 자기라기보다는 아바타나 캐릭터에 가까웠다. 반면에 친구와 일촌을 맺고 파도타기와 일촌평으로 교류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보다 친밀하고 믿을만한 관계를 겨냥했다.

2. 디지털 카메라 보급

당시 디지털 카메라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포장하기가 더 쉬워졌다. 초고속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라는 외적 조건이 갖춰지면서 온라인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미니홈피라는 공간에 빨아들였다.

자기 표현의 욕구는 미니홈피를 꾸미는 스킨과 아이템, 배경음악 등 디지털 콘텐츠를 파는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졌다. 자기 정체성에 돈을 쓰게 했다. `도토리`는 가상화폐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3. 꾸준한 시스템 투자

서비스가 급성장하면 이를 뒷받침할 서버와 스토리지 투자가 필수다. 2003년 SK가 인수할 때 싸이월드는 미니홈피와 도토리 등 기본적 형태를 갖추고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2003년 400만개던 미니홈피는 2005년 1500만개로, 2007년엔 2000만개로 늘었다. 김종훈 SK컴즈 대외협력실장은 “인수 초기 최우선 과제는 시설 투자였다”며 “2004~2005년 싸이월드 도약기에 적극적 투자로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프리챌이 2002년 무리한 유료화를 추진했던 이유도 시스템 비용 때문이었다. 한게임은 당시 거액 투자를 받은 네이버와 합병해 시스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실패 포인트

싸이월드는 왜 페이스북이 되지 못 했나?

1. 사용자 편의 한계

싸이월드는 내 미니홈피라는 본거지를 기점으로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차례로 방문하고, 친구가 내 미니홈피에 찾아오는 `마실` 구조다.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일촌 파도타기를 하거나 일촌평을 남겨야 네트워크가 유지된다.

반면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친구 소식이 자동으로 사용자 페이지에 전송되는 `피드` 방식이다. 여기에 `좋아요` 버튼 하나로 친구에게 간단하게 관심을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친구가 내 미니홈피를 방문한다`는 전제가 있어 꾸미기 아이템 판매가 가능했지만 점점 `덜 번거로운` 서비스를 찾는 사용자에게 다가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 네트워크 확장 실패

싸이월드는 해외 진출과 모바일 변신에 난항을 겪으면서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2005년 미국, 일본, 중국 등에 진출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 했다. 진출 국가마다 현지 특화 싸이월드를 만들었지만 실패했다. 2011년 한류 팬과 젊은 여성층 등 틈새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공통 플랫폼 기반 글로벌 싸이월드도 부진했다.

늦은 스마트폰 대응도 뼈아팠다. 아이폰에 소극 대응했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싸이 1촌보다 휴대폰 전화번호가 강력한 네트워크가 됐지만, 싸이월드는 노후한 1촌 네트워크를 버리지도 살리지도 못했다.

3. 한국적 규제 상황

국내 인터넷 규제 환경도 싸이월드에 영향을 미쳤다. 1차 해외 진출 당시 각 나라마다 별도 서비스를 연 것은 주민등록번호로 실명을 인증해야 하는 국내 규제 환경과 맞추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국내 사용자가 해외 가입으로 국내 규제를 우회하지 못 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해외 진출 실패 이유가 이것 하나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 결정은 싸이월드의 해외 확장에 장애물이 됐다. 회원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관행은 결국 2011년 싸이월드와 네이트 개인정보 해킹 사건으로 이어져 2차 해외 진출 계획을 의욕적으로 밝히던 SK컴즈의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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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