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전송료 불편한 진실]<하>합리적 조정자가 없다

지상파 재전송 문제를 단순히 방송사업자 간의 이익 조정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철저하게 시장 경쟁적 관점에 매몰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상파 재전송 정책은 지상파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 제공을 통한 공익성 확보라는 근원적 정책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해외는 어떻게 하나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정부가 원칙을 정했다.

유럽은 지상파 재전송이 의무적 성격을 갖는다고 규정한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무료로 채널을 공급하거나 재전송에 드는 비용을 플랫폼 사업자에게 지불하는 형태의 대가 거래가 일반화돼 있다.

유럽연합은 공공서비스방송(PSB:Public Service Broadcasting)인 지상파 방송사는 시청자에게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사회적 책무를 갖고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전송수단에 관계 없이 모든 시청자에게 시청 접근권을 제공하는 것이 정책 목표다.

법에도 명시돼 있다. 유럽연합 통합법 `보편적 서비스 지침`에는 일반적 공익 목표 달성을 위해 의무재전송 규정을 담았으며, 회원국 상황에 따라 의무재전송하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경제적 보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경쟁 관점에서 지상파 재전송 정책을 제도화했다. 케이블법 재전송 동의제도를 통해 상업 지상파 방송사가 케이블사업자의 재전송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지상파 방송사는 3년 주기로 재전송 동의나 의무재전송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의무재전송을 선택하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는 별도 대가 없이 지상파 방송을 재전송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SO와 지상파 방송사가 협상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지상파 방송 편성을 제외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가 재전송 원칙 세워야

지상파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분쟁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명확한 재전송 원칙 부재다. 방통위가 재전송 제도 개선을 논의했으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핵심은 재전송을 통해 지상파를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지상파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 제공에 대한 방송법상 공적 책무가 불명확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도 보편적 시청권을 위한 의무를 다할 필요가 없다.

방통위가 발표한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지상파 직접 수신율은 7.9%다. 난시청 해소 의무도 국가기간방송인 KBS에만 제한적인 형태로 부여하고 MBC와 SBS 등에 대한 의무 부여는 없다.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을 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지상파 방송사가 직접 수신율을 높이도록 하거나, 재송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이에 대한 원칙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강혜란 여성민우회 위원은 “방송법에 명시된 노력이라는 단어를 없애야 지상파가 중계소와 송신소를 지어 직접수신율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지상파 방송사가 직접수신율을 높이는 것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방송법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가 산정 대안은=학계는 재전송료 갈등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산정방안을 제안한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최초 목적인 `지상파의 보편적 접근`을 달성하는 산정방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지상파에 줄 총액을 정하고 이를 유료방송사업자가 분담하는 방안이 있다. 또 저작권 요율 산정 방식에 따라 정하는 방안도 있는 데 이 경우 매년 요율이 인상돼도 유료방송사업자가 예측 가능한 인상폭이어서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전송이 지상파와 유료방송사업자가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운용돼 왔기 때문에 보완적 관계에서 서로의 기여분을 판단해 대가를 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대가 산정 방식 지침을 내려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박사는 “280원이나 400원이나 대가 수준을 정부에서 정하는 것은 사업 내역을 세세하게 알아야 하므로 말이 안 된다”며 “대신 어떤 방식으로 대가 산정을 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려주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가 재전송을 하지 않을 때 손해보는 광고비용과 직접 수신을 높이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한 기회비용 방식, 지상파가 방송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드는 원가와 유료방송사업자가 송출하는 데 쓰는 원가를 계산하는 원가 방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권건호·전지연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