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들판과 마당이 놀이터다. 주인이 주는 먹이도 먹지만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먹을 거리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동료 닭들과 재미난 놀이를 하면서 성장한다. 가끔 들판의 보리 같은 곡식을 주워 먹고 혼쭐이 나기도 하지만 사람이 생각하기에 먹어서는 안 되는 것도 먹는다. 그래서 닭은 모래주머니가 있는지 모르겠다.
들판에서 뛰놀던 닭이 어느 날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양계장의 사육 공간으로 잡혀 왔다. 그렇게 신나게 뛰어놀던 들판도 이제는 꿈속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무대일 뿐 닭의 놀이터는 아니다. 놀던 닭은 이제 몸을 비틀기도 힘든 비좁은 공간에서 생명을 다할 때까지 주인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닭은 이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주는 정해진 먹이만을 먹고 가급적 운동을 자제해야 한다. 운동을 할 수도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닭에게 맡겨진 미션은 빠른 속도로 보다 많은 양의 달걀을 생산하는 것이다. 닭의 존재이유는 달걀 생산 이외에 살아가는 즐거움은 없다. 평생을 갇힌 공간에서 자라는 닭의 운명은 무기징역으로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는 장기 수형자나 다름없다.
장기 수형자는 그래도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일도 하고 주기적으로 종교생활도 할 수 있지만 닭은 오로지 앉거나 서서 견디는 움직임 밖에는 다른 몸동작은 불가능한 공간에 갇혀 살아야 한다. 달걀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닭은 가급적 운동을 자제해야 한다. 운동을 하면 닭고기의 질이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먹은 만큼 정확하게 달걀을 낳아 주인에게 보답하지 않으면 닭은 맥주 안주나 사람들이 즐겨 먹는 치킨으로 가는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
닭은 주인이 주는 먹이를 열심히 먹고 가급적 최상의 달걀을 낳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닭이 달걀을 낳지 못하면 닭은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A4용지 한 장 크기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닭을 사육하듯이 지금 우리는 들판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을 창백한 교실과 학원에 가둬놓고 학부모와 학원 강사가 던져주는 지식만 먹고 사는 아이로 기르고 있지는 않은가요? 아이의 꿈과 개성보다 부모의 꿈과 성향대로 아이를 끌고 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