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민간 금융기관이 다소 생소한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자동화기기 수수료, 과연 과도한가`란 주제였다.
우리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금융 서비스 중 하나가 바로 CD·ATM기다. 작년까지 은행들이 이 ATM기로 금융소비자로부터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은행들은 앞다퉈 수수료를 내렸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은행의 수수료 수입은 전년 대비 약 900억원 줄었다. 특히 자동화기기 운영으로 약 844억원의 손실이 났다. 자동화기기 1대를 운영하면 은행은 약 166만원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가 100% 객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찌됐든 은행 또한 ATM기 운영에 불만이 쌓인 상태다. 그런데 소비자 또한 수수료가 그렇게 인하된 것 같지 않아 불만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금융결제원(금결원)이 있었다. 은행들은 공동결제망을 운영하는 금결원이 현실에 맞지 않는 망 사용료와 분담금을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2004년 금결원은 은행 간 수수료를 300원에서 450원으로 올렸다. 한 고객이 국민은행 카드로 신한은행 ATM기를 통해 돈을 찾으면 `타행 수수료`가 붙는다. 그럼 이 타행수수료 중 450원을 국민은행이 신한은행에게 ATM기 사용료 명목으로 지불한다. 이게 바로 은행 간 수수료다. 금결원은 10년째 이 체계를 유지했다. 재래식 정산구조에다 현실과 괴리된 수수료 체계다.
한발 더 나아가 금결원은 각 은행들에게 ATM·CD공동망 사용료와 인터넷뱅킹 전자금융 공동망 사용 명목으로 분기별로 억대의 분담금을 받는다. 한 은행당 많게는 2억원대의 분담금을 받는다. 은행들은 정작 이 분담금이 어떻게 산정됐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다.
상대적으로 비난여론이 덜한 증권사는 ATM기 몇 대만 갖다놓고 수수료 장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금결원이 타행간 수수료를 10년간 450원으로 묶어 놓으니 역으로 이를 악용한다.
은행만 집중 포화를 맞고 있을 때, 증권사는 오히려 높은 수수료를 책정해 부대수익을 올린다. 금융업권별 역차별이 벌어진다. 금결원만 침묵을 지킨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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