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의심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지난 15일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중소기업청장으로 내정한다는 청와대 발표와 사흘 후 들린 황철주 중기청장 내정자의 사의 표명 소식이었다. 처음 내정 발표를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두 가지였다. `20여년 중소벤처기업을 운영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중소기업정책을 잘 펼쳐 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하나였다. 또 하나는 `최근 몇 년 사이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벤처기업협회장 역할까지 맡으면서 온전히 신경 쓰지 못했을 것 같은 회사 운영은 어떻게 할까`하는 걱정이었다. 황 내정자는 중소기업 현장을 중기청 안으로 끌어 들여와 정책을 현실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랬던 그가 `주식백지신탁제도`라는 높은 벽에 부딪혀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새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또 한 번 생채기를 입었다. 이번 일은 청와대와 황 내정자 간 미스커뮤니케이션에서 생겼다. 양쪽 모두 상처를 입은 반면에 얻은 것도 있다. 정부가 창업기업인이 고위 공직에 진출할 때 보유 주식이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팔지 않고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주식보관신탁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지난 정부에 한 벤처 출신 기업인은 보유한 회사 지분을 모두 처분한 후에 대통령실 비서관을 수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대 국회의원 중에는 자신이 보유한 기업 지분을 처분하고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 들어간 사례가 있고, 또 보유 지분을 처분하지 못해 지경위에 들어가지 못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정부 고위직에 민간 기업 경험이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려면 문호를 더 열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고위공무원이 되려면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민간 기업 경력을 쌓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뛰어난 인재를 발탁하는데 공무원과 민간인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공무원 조직은 본질적으로 돈을 벌기 보다는 쓰는 데 익숙하다. 국민과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해 시행하는 역할을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예산을 나눠 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고 사고하게 마련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 `을` 입장에서 치열하게 마케팅해서 돈을 벌어 봐야 중소기업의 손톱 밑 가시가 전하는 고통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일부 고위공무원직에 개방형 직위가 도입되기도 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개방형 직위만 만들어 놓고 이번 황 내정자와 같은 사례를 예측하지 못한 셈이다. 주식보관신탁제도 추진은 체계적인 준비를 못한 탓에 값나가는 소를 잃기는 했지만 다음부터는 잃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부터다. 다소 삐꺽거리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잘못된 점은 빨리 인정하고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면 5년 후엔 박수 받으며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