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미래모임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한국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에 향후 3~5년이 중요하다”며 “일본을 비롯해 해외 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술 전문성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SW) 패키지화 전략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현재 경기 침체와 기술력 저하의 위기에 빠져 있는 일본 시장을 반면교사로 삼아 ICT 산업과 경제 발전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이날 토론의 주제는 일본 정보화 시장 현황과 공략 방안을 중심으로 한 `K-무브, 또 하나의 돌파구 해외진출`이었다. 특히 우리가 잘 모르던 일본 시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일본 경제가 과거의 번영을 뒤로 하고 오늘날과 같은 침체를 맞은 이유, ICT 분야에서 한국에 뒤처진 이유를 궁금해 했다. 이에 대해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일본은 학교 교육에서부터 도전을 할 수 있는 벤처 정신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교육을 주입받기 때문에 국민성 자체에서 한국과 차이가 난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교육에 대한 투자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주요 공약 중 교육은 늘 상위 공약 중 하나다. 하지만 일본 정치인들의 선거공약 최우선순위는 고령화 해소, 노인복지에 있다. 염 대표에 따르면 일본 교사들의 근무시간은 한국 교사들보다 길다. 대부분의 학사 업무를 손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 교육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염 대표는 “IT산업만을 반면교사로 삼을 게 아니라 고령화와 기득권 문제 등 현재 일본이 처한 다양한 현안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형 경희대 교수는 그가 학부 시절이던 1970년대 `과연 일본 전자공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현실은 놀랍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전체적 제품 가격의 20%를 유통비용이 차지하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새삼 우리나라의 IT역량이 얼마나 발전했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느끼고 있다”며 “`K-무브`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이제 일본에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에 해외 진출을 위한 인력 양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일본 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진출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의견도 나왔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일본 진출은 지금이 가장 적기”라며 “2000년대 초반 한국 제품이라 안 된다고 하던 고객사가 많았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의 국격이 한층 올라갔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한국 IT 제품과 컨셉트에 관심이 많다고 덧붙여 말했다.
참가자들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기도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한국 제품에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지금 해외 진출의 물꼬를 터놓지 않으면 후발 국가들에 추월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2007년 당시 미국에 처음 물건을 팔았는데 당시 느낌은 김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 파키스탄 사람이 와서 김치를 팔겠다고 하는 느낌이었다”며 “하지만 요즘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관심을 가지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국격이 높아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제조와 유통에만 관심을 둔다는 지적이다. 이베이나 아마존, 페이스북처럼 물건 판매가 아니라 사람의 행동과 마음을 관리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A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다른 회사 제품을 사용하면 우리 고객이 아니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일본의 실패 모델을 뒤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설명이다.
오 대표는 이에 따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충분히 성공한 다음 이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만들어 제품이 아니라 문화를 팔아야 한다”며 “하드웨어 제조 마인드에서 소프트 마인드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며 이게 기회이자 위기인 이유”라고 말했다.
◇해외진출, 결국은 품질에 달렸다=해외 진출을 위해서 그 동안 축적된 SW 지식을 자산화·패키지화하는 기술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백원인 이미지넥스프 대표는 “과거 현대정보기술을 인수하고 베트남과 파키스탄 등에서 사업을 추진했는데 단순한 SI 사업으로는 수익 창출이 어려웠다”며 “내부 지식자산과 패키지화하고 SW를 라이선스화해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상승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IT기업은 SI가 아닌 지식 자산 패키지화, 라이선스화해서 판매하는 부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SW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현지 언어로 된 소통, 라이선스 공급 이후 사후관리(AS) 능력이 있어야만 해외 사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도 나왔다. 장세탁 한국클라우드포럼 회장은 “과거 우리 정부가 선진 기술을 도입할 때 일본 제품을 많이 도입하고 참고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상활이 달라진 만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내용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가 기업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본 전자정부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섞인 제언도 나왔다. 임규관 스마트윌 대표는 “주변 퇴직 전문가들이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해외 파견 프로그램으로 해외 정부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의 IT경험과 역량을 제3국에 전달하면 국내 기업이 만든 SW가 진출하기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도 이처럼 퇴직전문들을 파견해 전자정부나 정보화 노하우를 전하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을 비롯해 해외 수출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제품의 품질이다.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는 1000개 고객사 중 500개 이상이 해외 고객사다. 하지만 전체 7개 제품 중 3개만 수출될 뿐 나머지는 국내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오재철 대표는 “한국 SW가 해외에 나가면 어디를 가든 늘 미국 제품과 경쟁을 하게 된다”며 “현지에서는 대부분의 SW 제품이 미국과 경쟁에서 뒤처지는데 이는 기본적인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처럼 기초적인 기술에 투자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페이스북은 만들 수 있지만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수억명 단위 트랜잭션을 처리할 기술이 없다는 설명이다.
오 대표는 “앞으로 3~5년 정도의 기간 동안 이런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해외 진출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며 “인력양성과 기초 기술개발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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