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창조경제와 생태계 디자인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산학협력본부장 boong3333@gmail.com

새 정부는 창조경제를 강조한다. 이의 본질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성공과 실패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ET단상]창조경제와 생태계 디자인

미국은 지난 10여 년간 IT, 나노, 바이오 기술, 그리고 이들 간 융합에 수조달러의 연구비를 퍼부으며 많은 연구결과를 양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몇몇 대기업의 기술력만 향상시켜줬을 뿐이다. 대다수 청년의 일자리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세계의 미래 기술을 선도한다는 창조의 상징 MIT미디어랩도 지난 10년간 어마어마한 연구비만 소모했을 뿐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그럴듯한 글로벌 히트 상품 하나 내놓지 못했다.

성공사례도 있다. 애플의 생태계다.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애플 생태계`는 엄청나게 많은 청년 일자리와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제조기업까지 포함하면 애플이 창조해낸 새로운 경제 규모는 미국 내 시가총액 1위 기업, 청년 일자리 200만개, 액세서리 제조기업 10만개 등 그 수만으로도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R&D사업은 90% 이상이 제조 기술 개발에 집중돼 있다. 연구영역도 글로벌 트렌드에 민감하게 IT·BT·NT 분야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의 시장상황을 감안하면 신정부의 창조경제는 좀 더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모방의 길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창조에 도전해야 한다. 원칙은 분명하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야 하고 시장 생태계를 키우는 일이어야 한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곳으로 독일과 이스라엘을 들지만 이들은 우리와 환경이 다르다. 독일은 많은 노하우의 축적이 필요한 아날로그적 기술기업들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고, 이스라엘은 국방기술개발의 인프라를 토대로 성장한 벤처기업들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주력제품들이 세계의 소비자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세계 1위, 스마트 TV 세계 1위, 자동차 판매대수 세계 4위 등 소비자들이 직접 선택하는 제품 분야에서 엄청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분야는 성장세도 폭발적인데다가 산업생태계도 매우 커서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적합하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분야가 있다.

바로 콘텐츠산업이다. 뮤직비디오 하나로 세계 14억 인구를 매료시킨 싸이가 있는 나라, 수억 명의 팬을 확보한 한류스타들이 즐비한 나라, 미국을 제외하고는 1억 이상의 외국인 가입자를 확보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업이 있는 유일한 나라(네이버의 라인메신저), 자국 영화 상영 비율이 80%가 넘는 유일한 나라(2013년 현재),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한민국 생태계다.

우리가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면 새로운 시각으로 미래를 직시해야 한다. 애플이 그랬듯이 더 큰 생태계에 대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모바일 게임산업은 좋은 사례다. 스마트폰 산업 성장에 힘입어 카카오톡 메신저가 나오고 그 힘을 빌려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 등 모바일게임 생태계가 성장했다. 신정부가 준비해야 할 창조경제는 생태계의 디자인이다. 개별적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모바일산업, 자동차산업, 게임산업, 한류열풍을 어떻게 잘 엮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 소비자를 매료시키는 대한민국 특유의 DNA를 새로운 미래산업 창조 에너지로 활용해야 한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지금까지의 IT·BT·NT 융·복합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일자리창출 효과, 청년창업 효과, 신산업육성 효과 등으로 다변화돼야 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열정적인 청년도, 심리학에 심취한 인문학도도, 패션에 푹 빠진 디자이너도, 게임개발에 미친 프로그래머도 모두 어울려 잘살 수 있는 창조적 생태계를 하루빨리 디자인해야 한다. 융·복합의 기술에 매몰된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내는 신정부의 `미래 창조적 도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