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가 발명된 후 인류는 밤에도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망원경 덕분에 우주 탐험이 시작됐다. 창문이 있어서 대형 건물을 쉽고 빠르게 짓는다. 평판디스플레이(FPD)는 얇고 작은 다양한 전자제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광섬유가 개발된 덕분에 동영상 등 각종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내려 받는다. 이 제품들에 공통적으로 쓰인 소재는 유리다.
미국 뉴욕주를 가로지르는 86번 고속도로를 벗어나 코닝시에 들어서면 멀찍이 `코닝 유리 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첨단 유리를 누가 개발했는지, 특성은 무엇인지,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낮은 건물들만 띄엄띄엄 보이는 한적한 동네에서 유리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이유는 세계 1위 유리 회사 코닝이 있기 때문이다.
◇코닝의 역사가 곧 유리의 역사
1851년 설립된 코닝은 유리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코닝이 특수한 재질의 유리를 만들면 그게 곧 신제품이 되고 신시장이 됐다.
그릇이나 용기를 수작업으로 만들던 유리 회사 코닝은 지난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필라멘트 덮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산업용 유리의 시작이다. 1915년 열 저항이 높은 유리를 개발한 코닝은 1926년 세계 처음으로 철도용 렌턴 유리를 양산했다. 1940년대에는 TV 브라운관용 유리를 생산하면서 첨단기기 시장에 진입했다. 1970년에는 신호 손실이 적은 광섬유를 발명했다. LCD 디스플레이 개발 초기 단계인 1982년 LCD 기판 유리를 선보였다. 이후 첨단 전자제품용 유리 산업을 이끌어왔다. LCD와 발광다이오드(OLED) 기판 유리 시장의 60% 이상을 코닝이 점유하고 있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 등 프리미엄 IT기기의 전면 커버유리 역시 대부분 코닝의 고릴라 글라스가 사용된다. 잘 깨지지 않고 평평하고 각 면의 구조가 균질한 고품질의 유리를 양산할 수 있는 기술력에서 코닝을 따라올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유리 제조 기술 중 하나지만 `퓨전 공법`은 이 과정에서 코닝의 전매특허가 됐다. 원재료를 섭씨 1000도 이상 용광로에서 녹인 뒤 아래로 떨어뜨린다. 액화된 원료가 흘러내리면 열을 식혀 굳힌 다음 원하는 크기대로 자른다. 원료를 만드는 레시피와 공정 노하우가 결합해 고품질의 유리를 제조할 수 있다.
◇6개 첨단 산업, 유리가 이끈다
코닝의 사업 부문은 6개로 나뉜다. 디스플레이(기판유리), 통신(광섬유), 환경(배기가스 제어용 담체·필터), 생명과학(세포 배양 용기 및 신약 개발 도구), 특수 소재(커버유리·반도체·특수렌즈), 기타 제품(에너지저장장치 등)이다.
IT 기기에 이용되는 유리는 세 종류다. `고릴라 글라스`는 커버유리에 주로 쓰인다. 최근에는 노트북 PC 외장에 금속이나 플라스틱 대신 고릴라 글라스를 탑재하는 세트 업체가 늘고 있다. `고릴라 글라스3`는 NDR(Native Damage Resistance)이라는 기술이 적용된 유리다. 표면에 긁힘이 잘 생기지 않고 강도가 세 잘 깨지지도 않는다. 무게도 가볍다. 기존 커버유리보다 강도가 40% 개선됐다. 질산칼륨(KNO3)을 염료로 사용함으로써 원료의 나트륨과 칼륨을 교환시키면 응집력이 생겨 화학 강화를 구현하는 원리를 이용했다.
`로터스 글라스`는 고선명 화소를 구현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공정인 저온폴리실리콘(LTPS)과 산화물박막트랜지스터(Oxide TFT)용 박막 기판유리다.
`윌로 글라스`는 휘어지는 기판 유리로, 이를 적용해 롤투롤(Roll to roll) 방식으로 패널을 제조하면 잘 깨지지 않고 양산 시간을 줄이고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광섬유 산업에서도 코닝은 선두 업체다. 이 회사 `클리어 커브`는 둥글게 말거나 접어도 신호 손실 없이 데이터를 전달하는 광섬유다. 코어 부분을 특수 물질로 감싸 보호하고 그 위에 실리카(유리 원료)를 씌웠다. 총 두께가 125μm로 얇다. 한번에 여러 개 신호를 전달하는 멀티모드 클리어 커브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에 다량 쓰인다.
자동차용 세라믹 담체, 필터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벌집 구조의 세라믹 담체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신개념 에너지저장장치(ESS)도 개발했다. `울트라 캐패시터`라 불리는 이 제품은 자동차 배터리를 급속 충전시켜주는 소재다. 배터리 충전 시간을 몇 초로 단축시킬 수 있고, 차가 가다 서다 반복할 때는 저장해 놓은 전기를 흘려줘서 연비를 줄일 수 있다. 전극을 말아 원통형 저장장치에 내장했다.
생명과학 사업은 매출액 규모를 1조원으로 키운다는 목표다. 약 제조 용기 안에 특수 코팅을 가해 세포를 배양하고 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코팅 기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60년의 경영 노하우
코닝은 지난해 매출액 80억달러(8조8920억원)를 기록했다. 유리 업계 1위이자 산업소재 분야 특허 등록 건수 1위(2011년 기준)다. 기술자문위원회, 성장 및 전략자문위원회, 기술이사회 세 주체가 코닝의 기술 개발과 기획을 담당한다. 고객사를 발굴하고 신사업을 결정한다. 박막·표면처리, 무기·유기 소재, 반도체 소재, 통신, 광학, 생화학, 시스템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 10가지 기술 기반이 탄탄하게 구축돼 상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코닝(미국)=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