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가전업체 육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 주도의 우리 경제를 위해서는 대·중견·중소기업이 고루 포진한 가전산업 생태계 기반을 되살리는 것이 필수다. 몇몇 기업에 산업 전반을 의존하게 만든 것은 국가의 지속가능 성장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근혜노믹스`는 정보통신기술(ICT)의 기능 확대와 함께 경제적 약자 보호, 대기업 불공정 행위 근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영역보호를 골자로 한다. 중소 가전업체의 육성은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도 부합한다. 3회에 걸쳐 중소 가전업체 육성이 왜 필요한지, 대안은 없는지 살펴본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가전 강국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TV는 물론이고 세탁기·냉장고·에어컨 등에서 모두 글로벌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두 회사를 제외한 다수 중소 가전업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고급 대형 제품은 국내 대기업이, 소형 틈새가전은 외산제품이 잠식하면서 설자리가 없다.
하이엔드 대형가전 시장은 90% 가까이 삼성·LG가 장악하다시피 했다. 중소형 업체들이 공략할 만한 틈새형 소형가전은 해외 선진기업과 중국기업 영역으로 전락했다. 전동칫솔·헤어드라이어·전기면도기·커피메이커·로봇청소기·공기청정기 등에서 필립스와 밀레, 브라운, 일렉트로룩스 등 외산 브랜드가 선점하고 있다. 저가 중소가전에서는 가격을 무기로 하는 중국 업체의 도전도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통계청 전국 사업체 조사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전업체는 약 4500개다. 이 가운데 절대다수인 4400여개가 중소기업이다. 기술표준원에 안전인증기준을 얻은 가전 품목은 대기업 제품이 20개(8.1%), 중소기업 아이템이 225개(91.8%)였다. 중소업체의 품목 비중도 월등히 높다. 하지만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조사에 따르면 신생 가전 중소기업이 창업 2년 내 폐업하는 비율이 50%에 이른다.
중소기업 육성은 국가적 과제다. 그런데 왜 가전산업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가전은 지원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다른 산업보다 월등하다. 노동집약형 산업으로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 자동화 공정 위주의 자동차나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달리 아직도 컨베이어식 조립라인이 대세다. 이 때문에 인력 투입이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전산업의 취업유발계수(10억원 자금 투입 시 늘어나는 일자리 수)와 고용유발계수(10억원 생산 시 늘어나는 일자리 수)는 각각 10.1과 8.1로 반도체(5.6, 4.9)나 통신기기(6.2, 5.0), 자동차(8.8, 7.2), 선박(7.3, 6.0)을 크게 앞선다.
가전산업은 조립생산이기 때문에 모듈화된 부품을 잘 구성하는 것만으로 제품화가 가능하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없이도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다.
정재관 KEA 팀장은 “중소가전 시장은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시장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며 “중소가전은 대규모 R&D와 설비투자 없이도 상품기획과 시장분석으로 충분히 틈새시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가전은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산업이다. 상대적으로 경기 변동에 둔감해 수요가 꾸준한 분야다. 중소 가전업체가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도약하면 많은 주변 부품·소재업체에 신규 시장을 제공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중소가전사의 한 CEO는 “세계 시장에서 `IT 코리아` 브랜드가 강력한 만큼 중소가전 육성에도 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시장조사와 상품기획, R&D, 마케팅을 묶은 일괄 지원체계를 플랫폼처럼 만들어 중소업체에 제공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가전 시장 규모와 외산 점유율
자료:KEA 업계취합. 2011년 말 기준
세계 가전시장 현황 (단위:세계 10억달러, 국내 조원, Gfk)
*식기세척기, 김치냉장고는 백색가전에 포함, 영상음향(AV)가전, 통신가전은 제외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