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50주년]산학연 협력이 일군 기술 강국···독일 R&D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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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미국, 일본 등과 함께 제조 기술 강국의 지위를 굳건히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보다 산·학·연의 유기적인 연구개발(R&D) 협력 체계다. 대학은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산업에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운다. 연구기관은 차세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기업은 대학과 연구소가 개발한 신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독일이 탄탄한 R&D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 산업을 선도하는 이유다.

독일 R&D 협력 체계 개념도
독일 R&D 협력 체계 개념도

◇전문 교육에서 창업까지

독일 카를수루에 공과대학(KIT)은 전공 교육과 R&D를 별도로 진행하기 위해 캠퍼스를 이원화했다. 학사 과정을 마친 학생이 석·박사 과정 동안 R&D 캠퍼스에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라운호퍼, 막스플랑크, 라이프니츠와 함께 독일의 4대 연구 재단 중 하나인 헬름홀츠 연구소는 KIT와 함께 설립한 R&D 캠퍼스에 응용소재, 컴퓨터, 바이오 등 각종 산업 연구에 필요한 필수 장비를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373명의 전공 교수와 연 700만 유로(약 1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기반으로 산업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다. 독일에서 처음 석·박사 통합 학위 제도를 채택, 학생들의 학업 공백 기간도 최소화했다.

학생들의 벤처 기업 창업도 적극 지원한다. 지난 20여 년간 운영해 온 창업센터를 통해 학생들에게 연구소와 사무실을 제공한다. 특별한 입주 자격이나 심사 기준은 없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조건이다. 마이클 호프만 KIT 응용소재 연구소장은 “독일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도 KIT 창업센터에서 시작했다”며 “대학과 연구소가 함께 로드맵 구축을 지원하고 있어 창업에 실패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미래를 준비한다

독일 율리히 연구소(J〃lich)는 아헨 공과대학과 활발하게 R&D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재생 에너지와 바이오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율리히 아헨 리서치 얼라이언스(JARA)`도 설립했다. 독일 연방정부가 오는 2022년 까지 원전 완전 폐쇄를 선언하면서 차세대 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귄터 링스 율리히연구소 국제관계소장은 “연방 정부가 원전을 포기하면서 에너지 확보라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쳤다”며 “사회가 원하는 기초 재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설명했다.

프라운호퍼 연구 재단 산하 레이저기술연구소(ILT)는 다양한 소재를 레이저로 가공하는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세계 처음 메탈 분말을 사용한 3차원(D) 성형에 성공했다. 악셀 바우어 ILT 박사는 “근래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의 R&D 협력도 늘리고 있다”며 “중소기업과 소규모 과제를 진행하면서 꾸준히 기술력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일 기업의 힘, R&D 협력

독일 기업들은 대학이나 연구소와 공동 진행하는 R&D에 적극적이다. 집중 분석 및 연구가 필요한 프로젝트를 기업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소요 인력과 투자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일례로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인 보쉬(BOSCH)는 지난 2007년 독일의 한 대학 세라믹 연구소와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연료분사기(Fuel Injector)를 개발했다. 당시 신뢰성 검사 장비가 없었던 보쉬가 먼저 러브콜을 보내 성사된 프로젝트다. 이 제품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인 푸조의 신모델에 탑재되면서 무려 1억6000만유로(약 2263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아헨공대 섬유기술연구소(ITA)는 지난 2003년 3T(Textile Technology Transfer)라는 산하 기관을 설립했다. 3T는 기업과 직접 접촉해 신속한 R&D 협력을 추진한다. 복잡한 서류 작업과 승인 절차를 간소화해 기업이 원하는 시기에 연구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섬유 소재 전문 업체인 코오롱, KCC, 효성 등도 3T를 통해 협력 방안을 찾고 있다. 크리스 리 3T 아시아지역 담당 연구원은 “3T는 한국의 대학 연구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수 기관”이라며 “시장과 기업의 생리를 한 발 앞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R&D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