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영화의 흥행코드 CG와 VFX

올해 8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시각효과(VFX, Visual Effects) 부문 상을 받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은 소년 파이와 벵갈산 호랑이 리처드파커다. 손예진이 주연한 `타워`는 여의도에 신규 건축된 108층 쌍둥이 빌딩에서 화재가 나는 재난영화다.

[ET단상]영화의 흥행코드 CG와 VFX

두 영화의 공통점은 바로 컴퓨터그래픽(CG)이다. VFX 아티스트들은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실제 촬영이 불가능한 구명보트 위에서 소년과 호랑이의 사투를, 타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건물인 여의도 108층 쌍둥이 건물을 3D로 구현했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촬영분과 컴퓨터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를 구분하기 어렵다.

이제 영화에서 CG가 사용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2009년 흥행작 `아바타`는 영화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캐릭터와 각종 동식물, 배경까지 영화 전체를 장식한 CG는 아바타를 역사상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바타 이후 CG와 VFX는 영화의 기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라이프 오브 파이`가 할리우드 CG 기술의 백미를 보여줬다면 `타워`는 국내 CG 기술의 백미다. VFX 아티스트들은 할리우드와 기술적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종합예술이라 일컬어지는 영화의 VFX 작업은 최고의 기술력과 가장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CG 기술의 총화다.

CG 기술이 중요해지는 상황이지만 국내 CG 업계의 현실이 밝지만은 않다. 국내 CG 업계는 대부분 30명 내외의 영세한 구조로 운영되다가 2010년 주요 3개 업체가 통합해 발족한 디지털아이디어가 출범하면서 100명 이상의 대형 VFX 스튜디오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대형화할수록 적자규모가 점증되는 악순환 구조다. 영화 흥행과 연계되지 않은 계약관행과 열악한 제작여건이 결국 CG 부담을 증가시킨다. 또 추가 작업 비용을 보전받기 어려운 현실로 수익구조가 매우 열악하다.

최근 할리우드의 디지털도메인, 리듬앤휴즈의 매각과 법정관리사태에서 보듯 영화 성공에 기여한 기술력을 보유한 대형 VFX 스튜디오도 생존여부를 고심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는 더 열악한 시장 및 제작여건에 있는 우리나라의 CG 업계에도 시사점이 많다.

디지털도메인은 2012년 중국 업체에 매각됐고 다른 VFX 스튜디오도 구조조정과 매각의 과정에서 중국의 투자 확대가 예측되고 있다. 현재 중국에 비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국내 CG 업체와의 기술 역전은 이제 멀지 않은 듯하다. 외부 시장 환경이 요동치는 이때, 국내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CG 업체를 적극 발굴하고 육성해 국내 영화시장과 할리우드, 중국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필요가 있다.

CG 업체도 기술 및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과제이지만 정부의 정책적, 제도적 뒷받침도 필수적이다. 할리우드의 VFX 업체 위기는 미국 내 영화투자가 위축된 시장여건도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싱가포르, 인도 등 각국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세제혜택 등 적극적 지원책으로 시장이탈이 지속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한류가 영화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라스트스탠드`의 김지운 감독, `스토커`의 박찬욱 감독 등 할리우드 진출이 고무적이다. 지난해에는 흥행작 상위 10편 중 국내 영화가 7편을 차지했다.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CG 와 같은 기반기술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제작여건과 산업의 발전이 함께 따르지 않는다면 한국영화의 중흥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수도 있다.

박영신 디지털아이디어 대표 seanyspar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