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 정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정책 최고책임자가 “창조경제 해답은 SW”라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하니 기쁜 마음이다. 세계 SW산업이 반도체와 휴대폰 산업을 합친 것보다 크며 항공·국방·의료·가전 등 각 산업의 핵심역량이라는 것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SW산업 진흥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이 많지만 사람 즉, `SW 개발자`가 중심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SW산업을 미국·유럽·이스라엘처럼 일구고 싶다면 개발자가 다른 나라처럼 대접받는 쪽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처럼 변호사보다 더 대접받는 직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하다 해도 현 대한민국 SW개발자 처우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 개발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 잘 설명해준다.
“그 일은 힘들고, 빛도 나지 않고, 나이를 먹어도 공부해야 하고,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란다. 너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좋다”(고등학교 때 부모님) “잘 돼 봐야 게임회사 또는 인터넷 포털 회사에 입사하는 거다. 매일 밤을 새고 주말에 출근하고 더욱이 여자들은 그런 직업 싫어해. 능력 있고 예쁜 여자와 결혼 하고 싶어? 그럼 너도 고시나 대기업 시험 준비해”(대학 선배) “개발자 정년은 37세야. 너도 10년 지나면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해. 그러니까 지금부터 열심히 고객 접대하고 기획 영업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아. 평생 개발자? 순진하긴. 그런 건 외국 나가야 해”(직장 선배)
외국은 어떨까. “미국에선 엔지니어로서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요. 누가 그렇게 산다고 인생 실패자라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데 한국에선 5년이나 7년 이상 엔지니어로 산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수치예요”(구글코리아 수석 엔지니어)
이 상황에서 우리 SW산업이 미국·유럽·이스라엘과 같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나는 SW 개발자 파견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SW산업 구조와 형태는 노동집약형 비즈니스모델인 건설 산업에서 유래했다. 이익 및 비용의 기준이 `인건비`다. SW가격은 기술 난이도와 관계없이 인건비에 이익을 더해 청구한다. SW가 주는 가치보다 `내가 직접 개발하면 얼마` 또는 `내가 개발시키면 내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SW를 구매 대상이 아니라 용역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SW개발사 역시 혁신 개발보다 고객 요청대로 개발한다. 품질보다 납기, 기술보다 원가를 더 따진다. SW 기업의 본질인 `내부 효율과 뛰어난 품질, 기술혁신`보다 `고객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SW산업이 성장, 발전하기 너무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공공-대기업이 SW 용역 대신 상품 구매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하다.
대한민국에서 SW 용역개발이라는 말은 개발자 파견 또는 상주라는 말과 동일하다. SW개발자 지위를 그대로 말해준다. 좁은 자리와 열악한 냉난방, 늦은 퇴근,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근무환경이 `용역개발, 파견개발, 상주개발`이라는 단어 안에 모두 포함됐다.
새 정부는 SW개발자 파견을 제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용역 대신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인하는 정책이다. 용역 개발이라도 소스코드 사용권만 발주자가 갖는다든지, 프로젝트에 용역 비중을 일정 비율 이상 차지할 수 없게 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두 번째 파견 환경 개선이다. 파견 대가와 조건을 개선하고 파견 업무환경 및 업무시간 등을 표준프로세스로 만들어 표준화한 가이드라인 또는 제도 등이 있어야 한다. 우리 SW산업이 미국·유럽 수준으로 발전하고 젊은이 창업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성공신화를 만드는 지름길은 개발자가 보람 속에 열심히 일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사장 i@i-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