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카드사가 대형 가맹점에 백기를 들고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한다. 주요 카드사는 수십년간 결제대행을 해왔던 밴(카드결제대행) 결제망을 해지하고 대형 가맹점-카드사 간 직결제망을 까는 방안을 추진한다.
3일 주요 카드사는 대형 가맹점의 결제 수수료 인상분을 깎아주기 위해 밴사에 줄줄이 대행업무 해지를 통보할 방침이다. 담당했던 가맹점 결제 매입, 정산 업무를 밴사 망에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카드사 자체 전산 시스템과 연동해 스스로 업무를 처리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카드사가 밴사에 지급하는 대행 수수료는 연간 8000억원 수준이다. 이 자금으로 대형 가맹점의 결제 수수료 인상분을 보전해주자는 것이다.
KB국민카드는 최근 `직결제망 태스크포스(TF)` 조직을 출범시키고, 홈쇼핑 업계 `빅3` 중 한 곳인 현대홈쇼핑에 이 같은 수수료 인하 방안을 제시했다. 결제대행을 했던 밴사에도 이 같은 사실을 통보, 사실상 계약해지 작업에 나섰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TF를 구성해 현대홈쇼핑에 사실을 통보했다”며 “다른 대형 가맹점과도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카드도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 협상과정에서 직결제망 도입을 적극 검토한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대형 가맹점에서 오히려 직결제망 도입을 제안한 곳이 있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긍정적인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 밴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롯데카드는 이미 계열사인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롯데마트, 롯데면세점, 롯데슈퍼에 직결제망을 깔았다. 이 시스템을 다른 대형 가맹점에 도입하는 것을 내부에서 협의 중이며, 초기 투자비용만 가맹점과 합의된다면 직결제망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은 만큼 다른 카드사의 추이를 지켜본 후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른 전업 카드사들도 직결제망 도입에 동의하고 자체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다.
카드사들이 직결제망 도입을 추진하자, 밴사들은 즉각 반발하며 반격에 나섰다. 밴 업계는 카드사들의 이 같은 행위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행위`로 간주하고 KB국민카드와 현대홈쇼핑을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밴 업계는 “대형 가맹점과 카드사 간 직결제망 도입은 가맹점 평균 0.15~0.2% 인하하기 위한 꼼수”라며 “명목상의 직결제망일뿐 법에 위배되는 대형 가맹점 밥그릇 보호에 카드사가 나서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또 “밴사를 제외하고 직결제망을 구축하면 경제적 효율보다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서비스 구조”라며 “전산통신 장애 시 대응방안이 전무한 만큼 감독당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카드와 현대홈쇼핑 간 직결제망 도입 계획에도 법 위반 시도라며, 금융당국의 엄정한 처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민원을 받았지만 가맹점 간 수수료 문제는 카드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직결제망이 깔리면 수수료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만큼 별도 조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음성적으로 대형 가맹점에 지급됐던 밴사의 리베이트 관행을 끊기 위해 카드사의 직결제망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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