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하나씩 잘 정리된 배터리가 인상적이다. 정비된 서버실 같은 모습. 지난 4일 찾은 KB국민카드 UPS실의 첫 인상이다.
UPS실은 갑작스레 정전이 발생했을 때 비상 전원을 공급하는 곳이다. 전력이 정상 복구될 때까지 시간을 벌고 최악의 상황을 막는 역할을 한다.
UPS야 새로울 것 없다. 하지만 광화문에 위치한 KB국민카드의 UPS실은 조금 특별하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에 널리 쓰이고 있는 리튬전지로 만들어져서다.
◇안정된 성능·긴 수명…리튬전지 UPS
지금까지 UPS는 대개 납 축전지를 이용했다. 납 축전지는 납, 황산 등을 사용한 배터리다. 가격이 저렴해 많은 전지를 필요로 하는 UPS에 어울렸다.
KB국민카드는 납 축전지 대신 리튬전지로 UPS를 꾸렸다. LG화학 전지에, 시스템 구축은 LG엔시스가 맡았다. 리튬전지를 쓴 건 안정적인 성능에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리튬전지는 방전율이 100%다. 반면 납축전지는 68%에 불과하다. 방전율은 배터리에서 전기를 방출하는 정도로, 수치가 높을수록 정전 시 보다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는 의미다.
리튬전지는 또 자가방전율도 우수했다. 리튬전지의 자가방전율은 10% 미만, 납축전지는 35% 이상이다. 자가방전율은 스스로 전기를 잃는 비율이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충전의 수고를 덜 수 있다.
무엇보다 납축전지는 수명이 짧았다. 4~6년마다 교체가 필요한 반면 리튬전지는 10년 동안 수명이 보장됐다.
장단점들을 면밀히 따져본 후 결론이 나왔다. 초기 구입비용은 비록 2배 가까이 비싸지만 리튬전지 UPS가 더 이득이라는 내용.
KB국민카드 관계자는 “10년 사용 시 총소유비용(TCO) 기준 10년 후면 6000만~7000만원 정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서 UPS에 리튬전지를 쓴 건 KB국민카드가 처음이다. 새로운 기술을 과감히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전수검사는 없다, 실시간 모니터링
KB국민카드 UPS실에 리튬전지가 도입된 지 이제 막 4개월째다. 그간 정전 사고는 없었다. 그래서 실전 투입은 아직 이다. 하지만 가시적인 효과가 톡톡하다.
먼저 설치 공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납축전지는 특성상 세워 써야 했다. 가로로 눕히거나 적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리튬전지는 이런 제약이 없다. 작고 더 가볍다. 전산실 서버처럼 랙에 하나씩 설치할 수 있다.
전지수도 확 줄었다. 380여개(납축전지)를 80여개(리튬전지)로 대체했다. KB국민카드는 이렇게 UPS 공간을 4분의 1로 줄였다.
납축전지를 리튬전지로 바꾸면서 크게 달라진 모습 또 하나. 바로 유지보수가 편리해졌다는 점이다.
`모니터링 시스템(BMS: Battery Management System)`을 통해 전지 상태를 점검할 수 있게 됐다. 배터리 잔존용량, 교체 필요여부 점검 뿐 아니라 과충전·과방전 제어 등을 시스템으로 구현했다. 기존에는 모두 손으로 전수 검사하거나 외부 유지 보수 업체에 맡겨야 했던 일들이다. 이 기술 구현을 LG엔시스가 담당했다.
KB국민카드 UPS실에는 아직 납축전지가 남아 있다. 노후한 제품 일부를 리튬전지로 바꿨다. 회사 관계자는 “시스템 안정성 및 에너지 효율적인 측면에서 리튬전지가 갖는 장점이 많다”며 “다른 납축전지들도 (리튬전지로) 교체해 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세계 UPS 시장은 77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8조원 이상 규모를 자랑한다. 국내 시장 규모는 3000억~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LG화학과 LG엔시스 같이 리튬전지 기술과 IT 인프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리튬전지를 이용한 UPS는 올해 전체 시장의 약 5~10%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튬전지 UPS는 국내가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이며 한국에서의 성과를 기반으로 해외로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