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창조경제다. 경제 세미나의 단골 주제다.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정작 개념이 구체화하기는커녕 혼선만 커진다. 심지어 여권도 `도대체 창조경제가 뭐냐`는 의문을 쏟아낸다. 비전만 있을 뿐 개념 정리가 덜 된 탓이다.
전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최문기 장관 후보자는 `기초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에 기초한 융합 활성화로 새 일자리와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다`라고 정리했다.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설명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그는 CJ와 같은 영화 배급사가 아니라 아이디어 낸 작가가 더 많은 대가를 가져가는 것에 빗댔다. 그래도 지식경제나 융합경제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모델 국가를 보니 조금 더 이해된다. 우리처럼 자원도 빈약하고, 안보가 불안한 이스라엘이다. 인구 750만 명으로 우리보다 훨씬 적다. 이 나라가 창의성 교육과 기초기술 투자, 군과 산업 연계, 혁신 벤처를 바탕으로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됐다. 본받을 만한 덕목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 몸에 정말 잘 맞을까.
이스라엘 학생들은 질문을 참 많이 한다. 엉뚱한 주장이라 해도 교사들이 잘 받아들인다. 오히려 의견을 내지 않는 학생을 열등하다고 여긴다. 뻔뻔할 정도 당당히 주장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이른바 `후츠파 정신`은 이렇게 길러진다. 우리도 이런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유교문화가 여전하다. 입시 교육이 전부다. 창의성 교육이 우리가 지향할 목표는 맞지만 신성장동력, 일자리 창출이라는 창조경제 목표 달성엔 당장 도움이 안 된다.
이스라엘은 여자도 군에 가는 나라다. 군에서 배운 기술로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방이 중요한 우리도 본받을 만하다. 국방 기술의 민간 이양과 군인을 인재로 키우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많은 시일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혁신 창업 국가다.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벤처 창업이 많다. 명문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도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창업을 유도할 만하다. 그런데 창업-투자-인수합병(M&A) 또는 상장과 같은 창업 생태계가 여전히 취약하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장되거나 좌절하기 일쑤다.
이스라엘이 창업국가로 성공한 이유도 잘 봐야 한다. 앞의 덕목들도 있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미국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밀접하다. 특히 미국 군수산업과 투자 자본, 기술 산업을 쥐고 흔드는 이들이 유태계다. 창업 기업이 초기부터 미국 거대 수요자나 투자자와 연결될 기회가 많다. 이른 시일에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것도 이런 조건을 타고 난 덕분이다. 우리와 출발점이 영 다르다.
우리나라가 이스라엘보다 더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있다. 기술 제조업이다. 웬만한 전자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1위다. 자동차 제조 기술도 세계적이다. 특정 대기업 집중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엄청난 성과다. 이 경쟁력을 제쳐놓고 다른 곳에서 미래를 찾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리석다.
벤치마킹을 하려면 이스라엘보다 독일이 더 낫다. 독일은 우리보다 더 탄탄한 기술 제조업으로 유럽을 휩쓴 재정 위기에도 꿋꿋이 버틴다. 되레 강해졌다. 지멘스, SAP, 머크 등 대기업은 물론이고 글로벌 강소기업들이 즐비하다. 이런 기업들이 어떤 생태계로 키워졌으며 지속 가능한지 꼼꼼히 살펴볼 만하다. 다행히 우리도 실력 있는 중견 중소 기술 제조 기업들이 꽤 많다.
이스라엘로부터 배울 게 분명히 많다. 특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부럽다. 하지만 우리가 경쟁력 있는 분야부터 이 용기를 발휘해야지 막연하고 모호한 것에 쏟아부으면 만용이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르다.
신 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