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스토커가(家)의 비밀스런 본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아프락사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한 구절이다. 진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욕망은 자기파괴를 전제로 한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둘러싼 세계, 그 멍에를 벗어버리지 못하면 존재는 변화할 수 없다. 기존 세계(알)를 깨트리는 일은 전쟁과 같다. 자신 스스로나 주변, 과거라 불리는 존재 중 무엇인가는 부서져야한다.

[과학, 문화로 읽다]스토커가(家)의 비밀스런 본능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브스카 분)란 소녀가 꼭 그랬다. 18세 생일.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삼촌 찰리 스토커(매튜 구드 분)는 인디아가 기존 세계를 부수고 `스토커` 가문의 세계로 들어올 것을 강요한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는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때론 살인과 함께 쾌락을 느끼는 사냥꾼 이야기다. 영화 `스토커`에서 제시된 신(아프락사스)은 우리 세계에서는 사이코패스 같은 존재다.

사이코패스는 보통 사람의 감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살해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그들을 밖에서 보았을 때, 똑똑한 지능, 매력, 유창한 언변 등 호감을 살만한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유명한 강호순도 남다른 매력을 자신의 범죄에 십분 활용했다. 경찰에 검거됐을 때도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했다고 전해진다.

신경과학자들은 사이코패스 원인을 `뇌`에서 찾았다. 사이코패스의 뇌는 보통 사람보다 결핍된 것이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데클렌 머피 교수팀은 사이코패스 뇌를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촬영했다. 그 결과 뇌 편도체와 안와전두피질 사이의 연결 부위가 상당히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도체는 감정을, 안와전두피질은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감정과 의사결정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안드레아 글렌 교수팀도 사이코패스 뇌를 MRI로 촬영한 결과, 도덕적 판단과 감정 조절 부위인 편도체 활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킹스칼리지런던 정신의학연구소 나이겔블랙우드 박사도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 범죄자 가운데 사이코패스로 분류된 17명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뇌 구조를 관찰했다. 사이코패스는 뇌 전문측 전두피질과 측두극 회색질이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위는 다른 사람 감정이나 의도를 이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도덕적 사고 때 활성화되는 부위로 알려져 있다.

“내 치마가 펄럭이는 것도 바람 때문에 펄럭이는 거고, 꽃도 자신의 색을 선택할 수 없어요. 저도 지금 엄마의 블라우스 위에 아빠의 벨트, 삼촌이 사준 구두를 신고 있죠. 내가 무엇이 되든 내 책임이 아니예요.”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디아 스토커의 대사. 주변을 파괴하며 성장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사이코패스 유전성을 탓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셈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사이코패스에 대한 마땅한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치료 등으로 성급히 접근할 때 오히려 사이코패스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사회라는 `알`이 깨어지지 않길 기도할 뿐이다. 소설 데미안에서처럼 세상을 깨트린 존재는 특별히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입장에서 자기를 파괴하고자 하는 것은 `위험인자`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일이다.

`표적을 가진 우리들은, 세상의 눈에는 이상한 사람들, 위험한 광인들로 비칠지도 몰랐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깨어난 사람들, 혹은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