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편파주의, 코드, 회전문, 불통, 낙하산, 밀실, 보은, 수첩, 밀봉…. 뒤에 `인사`라는 말을 붙이면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인사는 만사라고 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인사는 세상에 없다. 못 하면 욕먹고 잘 해도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 사랑도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 되듯, 내가 하면 공평한 인사고 남이 하면 편파적 인사로 치부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사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ET칼럼]낙하산도 낙하산 나름](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4/14/416023_20130414162027_118_0001.jpg)
15일이면 박근혜 정부 출범 50일이다. 국무총리와 장·차관급 인사는 부실검증, 수첩인사의 한계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통령이 직접 인선한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각료급 인사만 6명에 이른다. 아직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은 임명하지 못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일부 장관 후보자는 여당에서조차 자질 논란을 이유로 임명을 반대할 정도다. 이쯤 되면 인사 사고를 넘어 인사 참사 수준이다. 지난달 말에는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여론에 떠밀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화만 더 키우는 꼴이 됐다. 지금 와서 보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강조한 `대통합·대탕평 인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위직 관료의 특정 지역·조직·대학 쏠림 현상으로 빛이 바랜 점이다. 결국 지난 12일 대통령이 민주통합당 지도부를 초청한 만찬자리에서 “인사문제로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며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여야 간 힘겨루기 끝에 국회 제출 52일 만에 통과했지만 새 정부는 아직 각료 구성을 마무리 짓지 못해 국무위원이 전원 참석한 국무회의는 열어보지도 못했다. 이변이 없는 한 대통령은 이번 주 중 나머지 장관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인사 추천과 검증 시스템은 문제가 드러난 만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관료 인선을 위한 인력 풀을 확대하고 청와대 민정라인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더욱 철저해야 한다.
각료 인사가 마무리 되면 또 한 번의 인사 폭풍이 몰려온다. 정부 부처와 손발을 맞춰 민간에 정책을 펼 산하 공기관장 인사가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말 당선인 시절 이명박 정부의 산하 공기관장 낙하산 인사를 싸잡아 비난했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는 절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올해 들어 기관장 요건으로 전문성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정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사를 임명하라는 것이다. 자칫 지난 정부가 보여준 물갈이 인사를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국정철학을 공유한다는 것은 곧 코드를 맞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참여 정부 시절 코드인사는 제식구 챙기기로 해석돼 부정적인 이미지가 짙다. 하지만 코드인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무조건 비난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국가든 조직이든 새 지도자가 들어서면 참모진은 뜻이 통하는 사람들로 바뀌게 마련이다. 낙하산 인사도 전문성과 힘이 함께 실리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하산도 낙하산 나름이다.
요즘 정부 부처나 청와대·산하공기관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모두 대통령 입만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적절한 인사를 지정해주기만 바라는 것 같다. 창의와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새 정부에서 정작 나라를 이끌어갈 핵심 주자들이 창의적인 의견을 개진하려 하지 않고 대통령 지시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그럴수록 핵심 국정 어젠다인 창조경제 구현은 더 멀어질 뿐이다. 산하공기관장은 코드인사·낙하산인사와 상관없이 나라를 위해 일 잘하는 인사가 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