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사업자 사이의 지상파 재송신을 둘러싼 분쟁은 최근 방송시장 생태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전통적 유료방송사업자인 케이블TV는 물론 위성방송, IPTV 등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유료방송사업자까지 예외 없이 지상파 방송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형국이다. 갈등의 가장 큰 이유는 지상파 재송신 대가 지급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다.
케이블TV가 유일한 유료방송사업자로 존재하던 2000년대 이전 시기만 해도 지상파 재송신 대가 문제는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상파 방송은 모든 국민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무료로 시청 가능한 보편적 서비스 위상을 지닌다는 사회적 합의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또 지상파의 지리적·인위적 난시청이 심각한 수신 환경 속에서 케이블TV로 재송신은 원활한 지상파 방송 시청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지상파 방송사나 케이블TV 사업자 모두에게 지상파 재송신이 이익을 안겨다 주는 상황이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가 적었다.
지상파 방송사는 자신의 과제인 지상파 난시청 환경 개선을 케이블TV의 재송신으로 해결했다. 케이블TV 사업자는 지상파 재송신으로 가입자를 보다 수월하게 확보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위성방송과 IPTV 등 새로운 유료플랫폼사업자들이 등장하고, 비지상파계열 MPP나 종합편성PP 등 지상파 방송의 경쟁사업자들이 성장했다. 지상파 재송신 이슈는 단순히 난시청 해소라는 보편적 서비스 구현의 문제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다(多)플랫폼 다채널 간 경쟁체제로 방송시장 구조가 재편되면서 지상파 재송신 사안에 지상파 방송사들과 유료방송사업자 간의 경쟁 차원의 문제가 추가된 것이다.
방송사업자 간의 재송신 대가 분쟁 및 법적 다툼은 200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변화된 상황에 맞는 새로운 지상파 재송신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새 제도의 핵심은 전통적인 보편적 서비스 구현 차원에서 사회적 공공재이자 가치재인 지상파 방송의 원활한 시청권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춰야 한다. 또 지상파 방송사업자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대가 거래의 룰을 설정해야 한다. 이 작업은 방송사업자들과 규제 기관, 국회, 시청자들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논의 및 사회적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상파 재송신 분쟁 상황을 보면 규제 당국의 안일하고 우유부단한 정책적 대응 속에서 지상파 재송신 문제 해결이 방송사업자들 간의 사적인 협상 및 힘겨루기 결과에 맡겨지는 양상을 보여 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상파 채널의 재송신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상파 재송신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인 시청자들의 지상파 시청권이 침해됐다. 이는 지상파 재송신을 둘러싼 사업자 간의 극한대결 구도 속에서는 유료방송에서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대다수 시청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최근 국회가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소 늦었지만 고무적인 일로 평가할 만하다. 현행 방송법 및 저작권법 상의 지상파 재송신 관련 조항들을 정비해 지상파 방송에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토록 하는 한편, 방송사업자 간의 공정한 경쟁의 룰을 설정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홍종윤 서울대 ICT사회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 kangtow@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