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가 흥남부두에서 피란민 1만4000명을 구출했다. 길이 455피트(약 138.7m), 7600톤인 이 배의 정원은 60명이었고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어 원래 13명만 더 태울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긴박한 상황에 무기 등 각종 화물을 버리고 피난민을 태웠다. 사흘 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내지 않았다. 화물을 모두 버리고도 2000명 정도 밖에 태울 수 없다던 이 배에는 7배가 넘는 인원이 탑승했다.
미국 교통부(DOT)는 이 배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을 한 기적의 배`로 선포했다. 2004년에는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오는 21일 일요일 오후 4시. 과학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2013년 제1회 사이언스 이브닝-과학이 있는 저녁` 행사가 열린다. 이 날 주제가 바로 `흥남부두의 기적과 선박의 과학-메러디스 빅토리호 스토리와 부력의 원리`다. 대한민국 역사 속 이야기의 과학 원리를 나누고 직접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됐다.
역사와 과학기술의 만남을 통해 과학적 흥미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변화다. 이 같은 변화는 21세기 과학기술을 설명하는 단어인 `융합(convergence)`로 설명된다. 자연과학의 경우에도 응용과학, 인문학 등과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학문 간 협력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특히 뇌과학, 심리학 등 사람과 관련된 분야에서 융합연구는 이미 보편화돼 있는 모습이다.
기술 분야 역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컴퓨터, 반도체, 레이저, 에너지 등에서 새로운 기술혁신이 이어지면서 기술과 기술 간 영역을 넘나드는 융합연구가 늘어난다. 최근 탄생하는 새로운 기술은 대부분 융합기술연구의 소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융합 열풍은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했다. 교육은 물론 사회, 문화 각 분야에 이르기까지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으면서 21세기를 지배하는 뚜렷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현상의 세계 곳곳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법에 대한 골격을 바꿔놓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과학관의 변신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과거 소장품 전시 위주의 과학관은 최근 `소통`과 함께 `즐거움`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갖고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다양한 소통과 즐거움이 강조되는 과학문화 확산은 청소년 중심이던 과학 관련 프로그램이 주부, 성인 등 계층별 맞춤형으로 다양화되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 개최하는 `사이언스 이브닝-과학이 있는 저녁`도 이런 변화가 잘 반영된 경우다.
기존 과학프로그램과 달리 이 행사는 2040세대 성인이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기획됐다. 작년에 진행된 행사에서도 화장품, 별자리 등의 주제를 가지고 일반인 관심을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다양한 계층으로의 과학문화 확산은 과학기술투자와 직결된다. 과학기술 발달에는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사회 전반의 과학기술 투자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과학기술을 영화나 콘서트처럼 문화로 즐길 수 있는 과학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일반인의 관심은 과학기술의 저변 확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로서의 과학의 중요성은 과학기술계 뿐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 뿐 아니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 과학기술 선진국도 대중의 관심을 과학으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억지로 하는 과학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대중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과학 문화를 만드는 것은 세계 과학계에 주어진 숙제다. 이를 위해 주요 선진국들의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의 5% 이상을 과학문화 부문에 투자한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융합기획실장은 이전 과학기술 투자와 각종 프로그램이 엘리트 체육과 같다고 전제한 뒤 “과학도 소수의 국가대표만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나 획기적인 기술이 나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과학문화 확산을 통해 국민 전체가 합리적 사고와 상상력을 키워가야 과학 강국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의 성인대상 과학문화 프로그램 현황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