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32>PCS의혹 검찰수사<3>

검찰은 PCS 의혹을 밝혀내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잔인한 5월의 예고편이었다.

대한민국 사정(司正)의 표상이라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움직이면 그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백이면 백 모두 형사처분을 받았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문민정부 경제실정(失政)과 PCS 의혹을 동시에 수사했다.

PCS 의혹 수사는 김대중 대통령 뜻이었다. 김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 시절인 1998년 2월 3일. 이날은 PCS 수사 확대의 분수령이었다. 김 당선인은 이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를 받고 “PCS 문제는 명확히 밝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이는 곧 PCS 수사의 가이드라인이나 진배 없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정치권 분위기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확 변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II분과는 기다렸다는듯 이튿날인 4일 감사원에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있었지만 현직 대통령이었다.

PCS 의혹을 인수위에서 계속 증폭시키자 청와대는 “정치적 표적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김 당선인 측에 보냈다. 이에 김 당선인 측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런 미묘한 시기여서 김 당선인이 완곡하게 PCS 의혹 입장을 밝혔지만 그것은 특혜 의혹을 명확하게 밝히라는 지시나 다름없었다.

인수위 인사 중 전직 각료 출신인 A씨는 “김 당선인이 그 정도 말하면 아랫사람들이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기침이 아래로 내려가면 태풍으로 변하는 법이다.

PCS 수사는 검찰이 내사 또는 인지한 사건이 아니었다. 국가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수사의뢰를 받아 착수한 것이었다. PCS 수사는 강도 높게 진행했다. 관련업체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조사 등 전 방위로 수사를 진행했다. 중수부는 필요에 따라 중수부 검사 외에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에서 전문가를 파견받았다.

서류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임재연 변호사(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검찰로부터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당시 정황을 진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임 변호사는 사업자 선정 전반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아는 내용이 극히 제한적인데다 자신의 증언이 다른 사람의 인신 구속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진술하지 않았다.

임 변호사는 심사위원 중 유일한 변호사였다. 그는 누가 자신을 추천했는지도 몰랐다. 정보통신부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기에 승낙했다. 나중에 변협에서 추천한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임 변호사의 회고. “증언을 하지 않자 검찰에서 한 번 더 연락이 왔어요. 나중에는 `진술서라도 써 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변호사인 관계로 검찰에서 모양새를 생각해 증언이나 진술서를 제출해주길 바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심사위원들과 합숙하면서 공정하게 심사를 했는데 이 일에 특혜 의혹이 있다면 정경유착의 들러리를 선 것이니 연명으로 소송이라도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심사위원의 의견이 나왔다. 4월 임 변호사는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3000만원 청구소송을 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교수 등 법조인이 아니어서 다 빠졌다. 그도 얼마 후 소송을 취하했다.

그의 계속된 증언. “이석채 전 장관은 나중에 무죄선고를 받았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비리에 연루됐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하자 정통부에서 `지금 초상집인데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하더군요.”

그해 4월 18일 오후. 김규섭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대검 강력부장, 수원지검장 역임, 현 변호사)은 이날 “PCS 사업자 선정 비리 의혹과 관련,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현 고문) 등 한솔PCS 관계자 4명을 출국금지했다”고 밝혔다.

김 기획관과의 일문일답.

-현재 PCS 수사 상황은.

▲PCS와 관련해 LG 관계자 5명을 조사 중이다(중수부는 4월 16일과 17일에 걸쳐 LG텔레콤에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또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 한솔PCS 관계자 4명을 출국금지했다(이 고문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다).

-현재 조사 중인 LG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LG 계열사 의혹을 받고 있는 미디아트와 다화산업, 상농의 대표와 직원들이다. LG에서는 이들 회사가 위장 계열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LG 관계자 중 추가로 출국금지한 사람은 없나.

▲없다.

-PCS 심사위원은 조사했나.

▲1명을 조사하고 돌려보냈다.

-한솔PCS 수사는 김현철씨(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역임, 현 김영삼민주센터 이사) 수사 때와 많이 다른가.

▲김현철씨 수사는 모르겠다.

-이석채 전 장관(현 KT 회장)과 접촉하고 있나.

▲아직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PCS 의혹 수사는 외국투자가들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IMF 사태로 인해 외국 투자 유치는 시급했다. 정부도 외국의 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외국기업의 투자대상인 한솔PCS가 수사를 받자 계약을 체결하려던 외국기업이 결정을 미루고 나섰다. 캐나다 통신업체 `벨캐나다(BCI)`는 그해 6월 한솔PCS에 1억8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벨캐나다 극동담당 부사장은 4월 중순 배순훈 정통부 장관(현 S&T 회장)에게 서한을 보내 “한솔PCS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사업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고 문의했다.

이에 대해 배 장관은 “범법 사실이 발견된다면 모르지만 PCS사업권 반납 사태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배 장관은 또 “비리 의혹은 밝혀야겠지만 경제가 어렵고 해외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에서 PCS사업자들이 수사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배 장관의 회고. “그런 서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기업들이 통신사업을 해보겠다고 해 인가해준 것이지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시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이런 사태를 모른 척한다`며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어요. 결국 벨캐나다는 한솔에 투자를 했습니다.”

그러나 투자는 투자고 수사는 수사였다. 검찰은 PCS 수사에 속도를 냈다.

4월 19일. 대검 중수부는 이날 조동만 한솔PCS 부회장을 불러 조사했다고 발표했다. 중수부는 비자금 조성 규모와 경위, 그리고 이석채 전 장관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에게 금품로비를 벌인 혐의 등을 밤새 추궁했다. 검찰은 조 부회장의 혐의가 확인되면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별도로 1996년 6월 청문심사위원 7명 중 3명을 추가로 소환해 심사과정에서 한솔그룹과 LG그룹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는지와 이 전 정통부 장관이 압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조사했다.

5월 3일 오후. 대검 중수부는 이날 PCS사업자 선정과 관련, 경상현 전 정통부 장관과 이계철 전 차관(방송통신위원장 역임)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경 전 장관을 상대로 PCS사업자 심사방식이 사업계획 심사→출연금 심사→추첨 3단계 방식에서 후임 이 전 장관이 1차 점수제 도입→3차 추첨제 폐지로 변경한 경위와 지난 1995년 10월 PCS 무선접속 방식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으로 최종 확정한 경위 등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를 벌였다.

경 장관의 증언. “검찰에서 사전에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검찰에 나가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검찰이 자료를 많이 확보했더군요. 2시간여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찰은 이 전 차관을 상대로 지난 1996년 6월 PCS 청문심사를 앞두고 심사위원 7명 가운데 5명의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내는 방식에서 갑자기 `전무(全無) 배점 방식`으로 변경한 경위와 그 과정에 이 전 장관의 개입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

5월 9일 오전. 대검 중수부는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그가 1996년 6월 PCS사업자 선정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집중 캐물었다.

검찰은 특히 김 전 차장이 1995년 한솔그룹 퇴직간부가 운영하는 S실업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주식을 무상으로 받았다가 같은 해 11월 주식 매각대금 명목으로 7000만여원을 받아 부인명의 계좌에 입금한 사실을 확인, 이 돈의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기섭씨가 지난 1995년 11월 한솔그룹으로부터 투자금 환수 차원에서 7000만여원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대가성 의혹이 있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무죄로 확인됐다.

검찰은 LG텔레콤이 이 전 장관 등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자금을 제공했는지도 수사했다. 검찰수사는 폭풍 전야를 연상하듯 막바지 절정으로 치닫았다. 잔인한 5월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