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미래모임]주제강연-“창조경제 시대에 걸맞은 SW 역할 고민해야”

17일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미래모임)`에서 김명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최고기술임원(상무)은 기술발전과 자동화로 인한 역기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곧 창조경제라는 설명이다. 불합리한 국내 SW 시장 구조 개혁을 해결 과제로 제시했다. 다음은 김 상무의 강연 내용이다.

기술 발전으로 과거 상상만 했던 일들이 오늘날 현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가는 사실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 누군가 `혁신`이라고 말하는 것을 누군가는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혁신을 위한 혁신의 산업 구조가 형성돼서는 안 된다.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이 고통을 낳을 수 있다.

기술 발전은 곧 자동화를 의미한다. 구글이 개발하고 있다는 무인자동차를 생각해보자. 무조건 “멋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무인자동차가 전문 운전자를 능가하는 성능을 갖췄다면 관련 직종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앞으로 자동화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한다. 최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과 일반인 사이의 격차가 커진다는 말이다. 생산과 소비의 주체인 중간계층이 언젠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창조경제가 화두로 떠오른 지금 ICT와 SW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불평등 심화가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산업이 바로 SW다.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다. ICT 산업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고, SW 분야가 특히 심하다.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 많다.

창조경제 시대에서 SW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자. SW 산업이 양질의 일자리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다. 사실 SW 산업 혁신이 사회에 `기여`한 부분은 중간계층을 사회에서 몰아낸 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의 기여다. 창조경제 사회에서 SW가 무슨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어떤 일에 도움이 되고 방해가 되는지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

자동화는 거스를 수 없고 이는 곧 중간계층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중간계층이 무너지면 물건을 구매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SW는 아이러니한 존재다. 자동화의 `주범`인 동시에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없어지는 직종이 있으면 이를 대체해 새롭게 생기는 직종도 있다. 자동화를 피하기보다는 적극 채택하고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SW가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SW와 ICT를 기반으로 어떻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지 함께 고민하자. 이 문제를 푸는 게 진정한 창조경제다.

국내 SW 산업을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지식재산을 무시 또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보상체계가 미흡하다. 제조업 사고방식으로 노동 시간과 분량으로 보상하려 한다. “한국에 SW 산업 같은 건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식재산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SW 산업은 살아날 수 없다. 유능한 SW 기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능력은 28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능력 차이가 있어도 2배 더 보상하는 것조차 막히는 게 현실이다. 창조적인 능력이 탁월해도 여러 제도와 규정이 막고 있다. SW는 천재적인 소수가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구조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SW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정부가 규격을 만들기보다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다.

SW 산업은 `빨리빨리` 보다 `착실하게` 가는 게 중요하다. 자본을 많이 투자한다고 갑자기 산업이 활성화 되는 게 아니다. 과거에는 신뢰를 기반으로 근원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같은 공공기관이 민간 기업과 연구비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연구소들은 붕괴 상태고 대학도 취업을 위한 학원 수준에 불과하다. 기반 학문은 무시한 채 당장 나가서 쓰고 금방 버리게 되는 것을 학문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상황에서 SW 산업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