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고졸 채용 열풍의 `빛과 그림자`

요즘 취업 시장에서는 4년제 대학이나 전문대 졸업자보다 고졸자가 갑이다. 지난 MB정부의 고졸 취업 정책 강풍이 새 정부에서도 강하게 불고 있다. 정부 정책에 호응해 금융권과 공기업, 대기업들은 올해도 고졸 취업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과거 대학을 졸업해야 `사람 대접받을 수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힘들게 대학졸업장을 딴 성공스토리도 있다. 때론 동생들 뒷바라지로 대학을 포기해야하는 소녀가장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드라마를 장식하기도 한다. 대학졸업장을 따기 위해 힘겨운 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고졸 취업에 훈풍이 불고 있는 지금의 `신 고졸시대`에서는 감동의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스펙보다 업무능력을 우선시하겠다는 채용자의 입장에서 고졸자는 더 이상 대졸자보다 열등한 인재가 아니다. 고졸 채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수리적으로 분석하긴 어렵겠지만 업무태도나 능력, 목표의식에서 고졸자가 스펙 좋은 인재 못지않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얘기다.

이런 이유에다 정부의 지원정책까지 더해져 고졸 채용은 꾸준히 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30대 그룹이 지난해 채용한 13만6000명 가운데 고졸 신입사원은 4만1000명으로 전체 신규채용 인력의 30%에 달한다.

올해 고졸 채용은 더 늘어난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331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62%가 올해 고졸 채용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올해 공공기관 취업자의 20%를 고졸자로 뽑고, 2016년까지 40%로 늘릴 방침이다.

청년실업 100만 시대에 고졸 채용 확대는 긍정적 모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는 고졸 채용 열풍의 이면에 드리워지고 있는 그림자도 눈여겨 봐야할 때다. 우선 고졸 채용이 확대되면서 전문대 졸업자의 취업문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있다. 이달 초 신규채용을 시작한 삼성그룹은 지난해까지 별도로 뽑던 전문대졸 채용분야를 없애고 고졸과 4년제 대졸자 채용만 발표했다. 상당수 대기업들이 올해 전문대졸 채용을 줄이거나 아예 없앴다. 고졸 채용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취업의 지름길이라고 여겨진 전문대 졸업자의 설자리가 좁아진 셈이다.

대학과 전문대졸 학생들이 학력을 낮춰 하향지원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이진다. 최근 공기업과 민간 기업에서는 대졸자들이 낮은 직급과 임금을 감내하고서라도 학력을 고졸로 낮춰 취업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고졸 채용 열풍이 낳은 취업시장의 어두운 면이다.

반면 고졸 응시자가 많았던 직업군에는 대졸자들이 몰린다. 전국 각 지역의 환경미화원 공개채용에는 대졸과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 지원자가 60%를 넘어선다. 경쟁률도 적게는 10대 1에서 심한 곳은 무려 40대 1이나 된다.

뭐든 한쪽에 치우치면 다른 한쪽에 탈이 나게 마련이다. 고졸 채용 확대가 청년 실업 해소에 분명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학과 전문대 졸업자의 취업을 막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취업 시장의 학력타파는 대학과 전문대, 고졸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정재훈 전국취재 부장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