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미래모임 참석자들은 SW 산업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가 SW 산업 육성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는 한편, 이전처럼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는 반응이다. 지금의 국내 SW 시장 구조가 크게 잘못됐고, 개선에 정부와 업계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SW 시장 구조 “확 뜯어고쳐야”
이날 토론 참석자들은 국내 SW 산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기형적인 SW 시장 구조를 개혁해야 정부가 외치는 창조경제를 구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창제 가온아이 대표는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SW 가격을 일반 제조업처럼 투입 노동력에 비례해 산정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국내는 SW를 지식재산이 아닌 인력 중심의 서비스로 보는 경향이 팽배하다”며 “SW의 가치, 생산성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투입됐느냐로 산정해 가격을 매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환경 때문에 SW 업체의 수익이 낮아지고 전문가들은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다”며 “SW 업체에 인재가 오지 않으니 기업은 성장이 더뎌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명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상무도 “지식재산에 대한 올바른 보상이 선행될 때 충분한 인력풀 확보가 가능하다”며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한다면 부차적인 문제들도 차차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 소프트웨어경영연구소장은 정부가 업계에 불신을 심어주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SW 창업을 지원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이 고등학생·대학생이 개발한 SW를 가로챈 사례를 제시했다.
김 소장은 “젊은이들의 SW 개발과 창업을 도와주기는커녕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최근 사례들을 보며 정부가 산업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예산 절감을 위해 민간 기업에 맞춤형 SW 개발을 시키고 관련 기관들이 무료로 사용하게 하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며 “국산보다 외산 SW에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산업 육성 의지를 신뢰할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전상권 한국정보보안연구소 부사장도 “조달 품목마저 실제 가격보다 단가를 낮게 책정해 놓는 등 시장 구조가 왜곡돼 있다”며 “SW 기업들이 제 값을 받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할은 `자율·개방·융합`
참가자들은 정부의 역할로 기업 자율성 강화와 원활한 정보 공유, 융합산업 활성화를 꼽았다.
이영로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 국가표준코디네이터는 정부의 데이터를 적극 개방·공유해 부가가치 높은 신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제 조건으로는 두터운 신뢰 구축을 꼽았다. 미국의 경우 록히드마틴, 보잉 등이 정부 데이터를 공유해 전투기 등을 제작하고 다시 정부가 제품을 구입하고 있으며, 이는 신뢰가 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가 데이터를 개방·공유해 새로운 사업을 돕겠다고 나섰는데 창조경제 관점에서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단어가 바로 신뢰”라며 “국방, 외교 등 보안등급이 높은 데이터를 제외한 정부 자료를 되도록 많이 개방해 민간 업체들이 책임지고 좋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활한 데이터 공유를 위해서는 등급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데이터 등급을 나눠서 일정 단계 이하는 민간이 직접 접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데이터를 하이·미들·로우 3단계로 나눠 미들 등급 이하 정보는 기관장 의사에 따라 개방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도 “패키지 SW를 이제는 서비스 영역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정부가 먼저 또는 내가 먼저 정보를 공유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SW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 보다는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은 소장은 “독일에 있을 때 이노베이션(혁신)은 매니지먼트(관리)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혁신을 위해서는 이를 저해하는 방해 요소를 없애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의미로, 정부의 역할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게임 산업 성장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뤄진 게 아니듯 SW 산업을 위해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김학훈 대표는 “정부가 매니지먼트가 아닌 관찰자 입장으로 시장을 지켜보다가 유망하다고 판단한 `싹`을 `나무`로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런 방법이 기존 제도의 틀을 깨는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형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장은 융합을 강조했다. 특히 교육 부문에서 SW와 다른 산업을 융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새 정부 임기 내에 특별한 성과를 달성하려 하기보다는 다음 정부가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SW는 문화고, 지식재산인 만큼 다른 산업과의 융합 교육이 중요하다”며 “만약 유통과 관련된 SW를 만든다면 유통과 SW에 대한 지식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전 정부가 임기 내에 녹색성장의 과실을 수확하려다가 실패한 것과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며 “창조경제는 녹색성장처럼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경호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정부가 SW 산업을 정량적 지표로 평가하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 종전 성과 지표로 여겼던 매출, 창업 수 등은 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매출 대신 산업 기여도가 높은 기업, 사회 공헌 활동을 많이 한 기업을 격려하는 게 창조경제에 걸맞은 포상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한상기 소셜컴퓨팅연구소 대표는 “이번 정부가 혁신, 창조,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SW로 삼아 대전환을 이뤘으면 좋겠다”며 “5년 만에 모든 성과를 이룰 수는 없겠지만 SW 엔지니어가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물꼬를 터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영 미래창조과학부 소프트웨어산업과장은 “정부도 SW 산업 육성에 의지가 있고 창조경제 개념과 연계해 어떻게 차별화 할 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인재를 양성하고 SW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