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에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말이 나온다. 부처님께서 달을 가리켰는데 제자들은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보고 달을 잊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달은 해탈·열반을 의미하고 손가락은 해탈·열반을 위한 계율, 참선법, 부처님의 가르침 등을 의미한다. 수행자가 당연히 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첫 번째 가르침이고, 달을 가리킨 손가락의 중요성도 잊지 말라는 것이 두 번째 가르침이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달을 보라는 것이 세 번째 가르침이다. 달을 보되, 손가락 없이 달을 보려는 극단을 피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최근의 창조경제 논란을 보면서 과연 무엇이 달이고, 무엇이 손가락이며,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보는 방법은 또 무엇인지 단상에 젖는다. 혹자는 창조경제 개념을 놓고 백가쟁명하는 시간에 차라리 현실적인 구현방법을 바로 모색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와 정부·기업·개인이 각자 역할과 목표치에 대한 기준을 개략적으로 정리하고, 그 이후에 액션에 돌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분명히 `창조`라는 개념이 중요하지만 창조의 사전적 의미에만 천착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경제`라는 개념 역시 창조국가, 창조사회, 창조산업, 창조기업, 창조기업가(창의 개인) 등 크고 작은 개념의 중간적 상징이다. 창조금융(자본), 창조교육, 창조문화, 창조복지 등의 주변 개념과도 서로 교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무것에나 무분별하게 창조를 갖다 붙인다며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도 곤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창조경제가 달이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일텐데 이 역시 논란이 많은 듯하다. 창의성이 실천성보다 중요한 시대가 왔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실천 없는 창조경제가 사상누각이라는 현실적 지적도 나온다. 또 발명적 창조와 발견적 창조를 구분지어 후자를 폄하하는 의견도 제시된다. 그러나 일종의 발견인 창조적 재조합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중요하다며 창조적 재조합과 발명적 창조는 결국엔 같은 개념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보라는 가르침은 더 큰 거대담론인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의 관계설정에 대한 고민을 연상시킨다. 앞서 언급했듯이 달을 대다수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대한민국의 지향점으로 뭉뚱그린다면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는 하나의 달을 다른 각도에서 보았을 때의 달라 보이는 옆모습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다른 하나를 위한 수단도 아니고 목표치도 아니다. 경제민주화라는 개념 아래 공정한 과정적 기준, 따뜻한 성과분배의 기준이 정립되어야 창조경제라는 달이 찌그러진 달이 아닌 보름달로 온전해지고, 성장을 통한 일거리 창출과 신성장동력 발굴로 창조경제 사이클이 선순환 될 때 경제민주화도 실질적이고 결과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혹자는 최근의 창조경제 논란을 `배틀`이라 칭하며 논란의 실익은 없고 탁상공론 같다느니, 과거 정부의 정책을 구호만 바꾼 복사판이니 하며 비판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인한 시대가치 정립과 이를 공감하고 만들어갈 주체인 국민들의 눈높이를 조율하는 일이다. 따라서 조금 시끄럽고 비생산적으로 보이더라도 반드시 이에 대한 토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공감대가 자발적이고 거국적인 새 마음 운동으로 발현되고 창조경제 5개년 계획 1기를 이끌어내는 추동력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장흥순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hschang60@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