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꽤 이름 있는 국내 밴(VAN)사 사장으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당국이 밴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법을 손질하고 불공정 행위를 한 대형가맹점에 과징금까지 부과했지만 새로운 형태로 리베이트를 받아가고 있다고 폭로했다.
지난달 공정위는 밴사와 불공정거래 행위를 한 홈플러스·홈플러스테스코, 코리아세븐 3개 대형 카드가맹점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3억7600만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금융감독원도 밴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을 개정하고, 밴 수수료 용역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최근 대형가맹점이 법망을 빠져나가면서도 공정위 감시도 피할 수 있는 `꼼수`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른바 `바지 밴 대리점`과 자체 계열사를 리베이트 수수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 밴 업계 고위관계자는 “대형 가맹점이 조그마한 위장 밴 대리점을 하나 만들어 마치 밴 업무를 중계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대리점을 통해 수수료의 80%에 가까운 리베이트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예 IT관련 계열사를 밴 리베이트 창구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모 유통 대형가맹점은 자체 IT계열사를 통해 밴 업무 일부를 대행해주고 그 명목으로 영업외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받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 계열사는 별도 포스시스템 일부를 들여와 결제 모듈을 깔고, 제한적인 유지보수 사업을 한다. 막대한 리베이트를 받기 위한 위장막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편법이 소문이 나면서 다른 대형가맹점까지도 밴 대리점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밴 대리점이나 계열사는 대형가맹점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법에서 규정하는 `대형가맹점 특권`에도 걸리지 않는다. 밴 업무 일부를 보기 때문에 공정위에서 말하는 불공정거래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게 밴 업계의 전언이다.
밴사들은 실제 이 같은 방법으로 리베이트를 받고 있거나 계획 중인 대형 가맹점 실명까지 거론하며, 금융당국의 엄정한 조사를 촉구할 방침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공정위나 금융위는 이 같은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밴 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은 반드시 뜯어고쳐야 한다. 하지만 이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슈퍼 갑`으로 불리는 일부 대형 가맹점의 꼼수부터 파악해야 한다. 대형 가맹점의 꼼수 앞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당국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과학벤처부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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