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 유입되면 규제 정책 힘 빠져…MVNO 시장 격랑 예고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미국·유럽)의 간접투자 지분율 제한이 사라지면서 주파수·접속료 배분 등 정부 정책의 통제력이 크게 약화될 전망이다. 해외 자본이 유입된 알뜰폰(MVNO) 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국가간 분쟁으로 비화될 소지도 높다. 정부 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우리나라 통신시장 구조가 외국 대기업 자본에 대항할 충분한 `내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3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유·무선 지배적 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을 제외한 기간통신사업자에 외국인이 최고 100%까지 간접투자를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한미,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내용을 반영한 결과다.

이에 따라 오는 7월부터 전체 118개(3월 현재) 기간통신사업자 중 두 지배적 사업자를 제외한 116개 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100% 지분 소유가 가능해진다.

대규모 해외 자본 유입은 정부의 정책수단 약화를 야기할 전망이다.

당장 통신 산업의 대표적인 정책 수단인 주파수와 접속료 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존의 정부의 강한 통제력이 외국 자본이 지배하는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외국 자본 차별`으로 공격받을 수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정부 주파수 정책은 긴 안목과 진흥·공정성 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짜야 하는데, 단기 이익에 집중하는 외국 자본과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크다”며 “유효경쟁 수단인 접속료도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다양하게 이뤄져왔던 `묵시적 행정지도` 관행이 모두 갈등으로 불거질 수 있다.

기술유출이나 장기 경쟁력 약화 등의 우려에 대한 방어장치도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 우수한 우리나라 통신 기술력을 노리는 외국 자본이 유입될 수도 있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주요사업을 매각하는 등 전체적인 통신 산업 경쟁력 하락도 우려된다.

한 전문가는 “외국자본의 지분 제한을 없앤 만큼 주식취득에 대한 공익성 심사를 강화해야 하지만, 이 역시 통상마찰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시장의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유효한 MVNO 시장도 마찬가지다. 아직 우리나라 MVNO 시장은 협상력을 갖출 수 있을 정도로 가입자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기존 이동통신사(MNO)와 상대적으로 `갑-을` 관계에 있다. 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도매대가 인하와 부가서비스 개방 협상 중재 등 다양한 진흥책을 펼치는 한편, 대기업의 MVNO 시장 진입에 대해 나름의 규제를 적용한다.

하지만 외국 자본을 등에 업은 MVNO 사업자가 등장하면 달라진다. 우선 이통사와의 협상이 사업자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 간의 문제로 확대된다. MVNO 업계 관계자는 “기존 이통사의 MVNO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가 FTA 조항을 적용해 국가 간 무역장벽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며 “공익적 목적의 규제까지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 대기업이 투자한 사업자가 MVNO 시장을 잠식해도 지난해 SK텔링크에 걸었던 `후불제 시장 진입 유예`와 같은 공정경쟁 정책을 쓰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