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개성

“발 아래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졌다. 말로만 듣던 송도였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은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고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장편소설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나오는 대목이다. 박적골 촌아이가 이십리 길을 걸어 개성 시내 구경에 나선, 그날의 첫인상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칠순의 노인이 된 종종머리 소녀는 개성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10여㎞ 떨어진 반도체 캐리어 제조업체 에스제이테크의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다. 2004년 12월의 일이다. 식장에 앉아 있던 작가의 마음은 이미 개성역을 지나 호수돈고녀 운동장을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식후 예정돼 있던 남측 방문단의 개성 시내 참관은 북측에 의해 전격 취소되고 만다.

이후 2007년 개성 관광의 길이 열렸지만, 끝내 그는 가지 않았다. “형식적 방문이 아니라 진짜 나의 고향 땅을 밟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지난 2011년 고향 개성을 닮았다던 구리시 아치울 마을에서 그렇게 눈을 감았다.

개성공단이 결국 폐쇄 수순을 밟나보다. 지난 2003년 현대아산이 공단 조성을 위해 첫 삽을 뜬지 꼭 10년 만이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에스제이테크를 비롯해 매일엘시디, 제씨콤, 부천공업, 용인전자 등 총 123개의 한국기업이 입주해있다. 이번 사태로 업체당 월 150억~2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이들 입주기업에 딸린 국내 3000여개 영세 협력업체의 피해는 또 어쩔건가.

공단 폐쇄의 정치적 함의까지는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다음 남북 간 정치적 합의에서건 경제적 필요에서건 혹 다시 공단 가동이 이뤄진다 해도, 이젠 상징적 제스처는 하기 싫어졌다. 수년 전 한 노 작가가 그러했듯 말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