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학에 한국 학생 2명이 입학신청을 냈다. 그러나 결과는 두 명 모두 탈락했다. 학업 성적은 탁월했지만 면접에서 “왜 공부하려 하고,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것에 정답과 오답이 있다고 배운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정확하고 논리적인 사고만이 시험을 통과하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좀 더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사고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은 한 가지 사고에만 전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왜 힘들게 공부했느냐`는 다소 갑작스런 질문에 우리 학생들의 대답은 궁색할 수밖에 없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발표한 `제2차 한국보고서`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교육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맥킨지 보고서는 “한국인은 고등교육의 가치를 너무 높게 평가한 탓에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위한 학원비와 과외비를 아끼지 않는다”며 “이는 결국 재무 스트레스 증가, 가구 규모 감소, 출산율 하락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한국 중산층 가구의 재무상황은 극도로 악화했다. 매달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로 적자를 내는 한국 중산층 가구 비율이 20년 사이 15%에서 25%로 많아졌다. 교육에 대한 왜곡된 투자와 인식이 우리 경제 전체를 기형적인 구조로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학부모들이다. 자녀가 스티브 잡스와 같은 도전의 길을 걷기보다는 대기업, 공공기관, 교육기관 등에 들어가 전통적인 패턴의 안정된 직업을 갖기 원하는 것이 대다수 한국 학부모들의 생각이다.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다 다른 데도 똑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 구조다. 그래서 학생들도 `안전한 직장(job security)`을 최고의 인생목표로 잡는다. 새로운 도전이나 기업인으로서 활동에는 부정적이다. 정부가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독려하지만, 정작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런 현실은 전략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코리아가 발표한 창조경제지수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중국 등 35개국을 대상으로 창조경제지수를 매긴 결과, 우리나라는 25위에 그쳤다. 정부 창업 육성 제도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첨단기술 경쟁력,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등은 세계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아이디어 창출 단계에선 31위로 꼴찌 수준이다. 주입식 입시교육의 영향으로 자기주도적 학습역량이 최하위권에 머문 탓이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봐도, 한국은 창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1%가 `우리나라는 창조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사회`라고 답했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나라로는 미국(38.2%)을 들었다. 반면에 한국이라고 답한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국가별 창조역량을 비교한 여러 평가에서 한국은 이미 최하위 수준으로 판결났다. 이런 평가 결과를 순순히 인정하기엔 너무 억울해서일까. 미래창조과학부가 국가 간 비교를 통해 창조경제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창조경제지수를 직접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한 국가의 창조역량을 어떤 잣대 하나로 매길 수는 없는 법이다. 국가별 평가결과를 매년 올림픽 메달 순위처럼 발표하며 `몇 계단 올랐다`는 것을 자축(自祝)하기 위한 이벤트라면 더욱 곤란하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강조할 부분은 강화하면 그만이다. 경쟁력 순위가 떨어졌다고 애써 변명할 필요도 없다. 창조는 결코 성적순이 아니다.
주상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