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출연연, 첫단추 다시 꿰자

`2개 연구회 운영 한계, 적은 출연금 탓 고유미션 수행 애로, 우수인력 외면하는 연구환경, 기관장 리더십 발휘에 어려운 경영여건, 유명무실한 출연연 평가.`

이 다섯 가지가 뜬금없이 무슨 얘기인가 할 것이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낸 윤종용 현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이 지난 2010년 `과학기술 출연연 발전 민간위원회`를 가동한 뒤 내놨던 보고서 요지다. 윤 위원장은 이 다섯 가지를 출연연 운영상의 문제점으로 봤다. 사실 이를 역산하면 출연연 문제는 웬만큼 해소된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선 잘 안 된다.

지난 2009년 26억원이나 들여 외국계 컨설팅업체인 ADL에 발주해 만든 출연연 선진화방안 보고서는 은근슬쩍 묻혀 버렸다.

이유는 하나다.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진화하는 과학기술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출연연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든 근본원인에는 `관료주의` 가 있다고 못을 쳐 놨기 때문이다.

정부관료가 산하조직을 관리할 때 `일 잘하는` 기관을 만들기 보다는 `말 잘 듣는` 기관을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공무원 입장에선 당연히 달가울 리 없다. 후문이긴 하지만, 이 보고서 이후 ADL담당자가 주위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바꿨다는 얘기도 돌았다.

실제 출연연을 들여다보면 시스템이 부실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연들이 참 많다.

19년간 일만 죽어라 했다는 연구원의 하소연. “정부가 장려하는 시책에 따라 애는 셋을 낳았다. 생활비에 사교육비까지 합쳐 한 달 생활이 빠듯하다. 자리 옮길 생각도 했다. 애들이 유학간다고 할까봐 겁난다. 사교육은 차치하고 보육문제라도 해결됐으면 좋겠다.”

외국서 일하다 KAIST로 옮긴 김 모 교수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김 교수 연봉은 90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명세서를 보면 세금 등 공제하는 것이 1000만 원 가량이다. 유학간 자녀에게 4000만원, 국내에 적응 잘 못해 국제학교 보낸 막내에 2500만원이 든다. 남는 것은 1500만원이 전부다.

2년 전 KAIST가 외국 초빙교수를 위해 추진하던 국제학교 설립 건은 각종 규정에 걸려 결국 좌초됐다.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발전 전략을 만들기 위한 TF팀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던 출연연에 큰 틀에서의 변혁을 꾀하기 위해서다.

출연연 미션은 ETRI, 조직개편은 KIST, 성과확산 작업은 생산기술연구원이 맡았다. 동원된 연구원 조직만 200명이 넘는다.

출연연은 지난 5년간 거버넌스 개편 얘기만 했다. 이제는 신뢰를 기반으로 모두가 일 잘 할 수 있는 시스템과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 기관평가에서 매년 A 등급받는 기관장이 3년 임기 뒤 여지없이 바뀌는, 이런 현실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게 출연연 창조경제의 출발점이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