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갑질`에 맞선 `을`의 반란

두 개의 녹취 파일이 인터넷을 달궜다. 하나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풋풋한 웃음을 짓게 했다. 앞은 남양유업 영업 사원과 대리점 사장의 대화다. 뒤는 LG유플러스 남자 상담원과 귀가 어두운 할머니 고객의 대화다. 기업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또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가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질 수도, 천장을 칠 수도 있는 그런 시대임을 실감케 했다. 이른바 `소셜 리스크`에 모든 기업이 노출됐다.

인터넷에 쏟아져 나온 남양유업과 윤창준 대변인 패러디물
인터넷에 쏟아져 나온 남양유업과 윤창준 대변인 패러디물

남양유업의 젊은 영업 사원은 중년 대리점 사장에게 욕설과 막말을 쏟아 부었다. 듣는 사람마다 치를 떨었다. 불매운동까지 번지자 경영진들이 지난 9일 사죄를 했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도 전방위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들끓은 분노를 누그러뜨리려면 한참이 걸릴 것이다.

그 분노가 얼마나 거센 지 사죄 다음날 온라인 여론을 보면 안다. 10일 새벽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대사관 인턴을 성추행한 의혹으로 경질된 사실이 드러났다. 메가톤급 뉴스다. 온라인엔 온통 윤 대변인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남양유업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한 풀 꺾였다. 그런데 일부 온라인 이용자들이 남양유업 사태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주윤야남`이라는 표어까지 등장했다. 낮에는 `윤창준 사태`를, 밤엔 `남양유업 사태`를 계속 주시하자는 뜻이다. 남양유업이 윤창중씨를 고마워 한다는 내용의 패러디 물도 쏟아졌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남양유업 사태에 분노할까.

여기엔 이른바 `갑질`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되는, 우리 사회 뿌리 깊은 권력 폐해에 대한 공분이 도사렸다. 이 사태 전에 벌어진 한 대기업 임원의 기내 여승무원 폭행, 중견 제과 기업 회장의 호텔 지배인 폭행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을`에서도 아주 힘없는 일개 종업원이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인간적인 모멸까지 받는 사건들이 잇따랐다. 일방적인 강제 발주, 계약 해지 등 갑의 횡포도 잇따랐다. `갑`이 `을`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그릇된 관행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보고 크고 작든 `을`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 그간 참았던 분노를 터뜨렸다.

LG유플러스 상담원 일화는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이 상담원도 고객과의 관계에서 `을`이다. 이에 걸맞게 친절했다. 그런데 고객 상담이란 게 사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그 할머니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잘못 알아듣는 것에 누구라도 짜증을 낼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원은 끝까지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정성껏 대답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남양과 LG 사례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 이중적이다. 완전히 다른 사례이기는 하지만 `갑질`엔 분노하면서 동시에 `을`의 참을성도 칭찬한다. 모순이다. `갑질`에 화를 내는 이들 역시 `갑-을` 관계를 기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이렇게 익숙할 정도로 `갑-을` 관계가 우리 사회에 뿌리박혔다. 그것도 왜곡된 채로다.

이를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게 뭉쳐져 `경제민주화`란 말이 나온 게 아닌가. 정부와 정치권도 법제화를 서두른다. 기업이든 기관이든 이른바 `갑`들도 자정 움직임이 한창이다. 불행하게도 한발 늦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여론을 통해 `을의 반란`이 나면서 `갑`은 주도하지 못한 채 `을`에 떠밀리게 됐다. 스스로 사회적 존경을 받을 기회를 한번 놓친 셈이다.

만약 영업사원이 거꾸로 떼를 쓰는 대리점 사장을 친절하게 설득했다면, 상담원이 할머니에게 막말을 했다면, 어찌 됐을까. 상황은 정반대가 됐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소셜 리스크`다. 일련의 사태는 누구나 이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권위주의 시대였다. 불편부당한 일이 있어도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럴 자신도 없고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적었다. 민주사회가 됐다. 디지털시대가 왔다. 부당한 일을 참지 않고 항의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젠 번거롭고 실효성도 적은 절차를 밟을 필요도 없다. 사실만 온라인에 올리면 그만이다.

기업들은 어느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글이나 동영상을 올릴 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번처럼 갑작스럽게 터져야 비로소 안다. 이 위험을 최소화할 예방책이 따로 없다. 임직원이 늘 고객과 사회를 생각하고 또 이러한 기업 문화를 만드는 길 밖에 없다. 이렇게 변화하는 기폭제로 작용한다면 일련의 사태는 `쓰지만 좋은 약`이 될 것이다.

`을`도 바뀌어야 한다. 무조건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거래가 끊겨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어떤 이가 모험을 걸까.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갑`이 원칙과 투명성, 그리고 배려 아래 `을`과 거래하지 않다가 언제 큰 홍역을 치를지 모른다. 불매운동과 공정위 조사에 직면한 남양유업이나 아예 회사 문을 닫은 제과업체와 같은 경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을`도 권리 회복을 넘어 `갑`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이젠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터넷 여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쩌면 우연한 사건에 엉뚱한 여론 재판이 벌어져 멀쩡한 회사를 한순간에 악덕기업으로 만드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해도 `신상털이`로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지금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한 진통으로 봐야 한다. 인터넷의 마녀사냥도 극히 일부분이다. 근거 없는 폭로는 곧 소멸하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우리 인터넷 문화도 이렇게 성숙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여전히 옛 관행에 찌들고 `열린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만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을의 반란`은 `갑질`을 일삼은 기관과 기업, 개인에게 새로 거듭날 기회를 줬다. `갑질`에 대한 비판을 외면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갑`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 `갑`이 훨씬 많다. 이를 기회로 삼지 못하면 어떤 악몽이 기다릴지 모른다.

그저 계약서 상 `갑`과 `을`만 없앤다고 될 일이 아니다.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메시지를 `갑`의 수장부터 임직원에게 보여줘야 한다. 또 이렇게 조직문화를 고쳐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선 일일이 법으로 규정돼 처벌까지 받는, 경영자엔 참으로 답답한 `닫힌 사회`가 될 것이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