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로 흘러드는 다마가와 강을 따라 놓인 JR를 타고 창밖을 보면 도시바, 파나소닉, 후지쯔를 비롯한 글로벌 전자기업 간판이 줄을 이어 나타난다. 이곳은 일본 전자산업을 이끌어 온 기업이 모여 있어 `일본의 실리콘밸리`로도 불린다.
지난 수십년간 일본 전자산업의 얼굴 마담인 소니·파나소닉 등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수 있었던 건 이들을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 준 부품·소재·장비 등 후방산업이 있었던 덕택이다.
전자산업의 필수재인 반도체·LCD 핵심 소재기업 TOK공업을 찾았다. 이 회사는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본사를 뒀고, 이곳에서 전철로 약 50분 거리의 고자군시에는 TOK의 첫 번째 제조시설과 연구개발(R&D)센터가 복합된 `사가미 센터(Sagami Operation Center)`가 있다.
TOK공업은 반도체·LCD 핵심소재인 감광성 수지(포토레지스트)와 미세가공 분야 선두권 업체다. 반도체 최첨단 공정인 불화아르곤(ArF) 노광(리소그래피)용 포토레지스트는 세계 1위다. LCD용 포토레지스트는 전 세계 점유율이 40%에 육박한다. 수십년간 반도체·디스플레이 강국으로 군림해 온 일본 전자 업계 성장과 더불어 세계 최고 기술을 개발해 왔다.
◇소재·미세 가공 기술의 합작품
TOK공업이 지난 1940년 설립 당시 개발한 제품은 브라운관 TV에 쓰이는 접착제다. 이후 1962년 프린트 기판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하면서 이 분야를 주력 사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1968년 반도체 포토레지스트 시장에 진출했다.
포토레지스트는 고순도 재료와 미세가공 기술의 혼합체다. 세밀한 패턴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감도가 높아야 하고 회로를 그렸을 때 선이 깔끔해야 한다. 표면이 매끄럽고 감도가 높은 소재 기술에선 가장 자리를 관리하는 미세가공 기술이 추가된다. 원재료부터 순도가 뛰어난 제품을 발굴해야 한다. 페놀계 벤젠 폴리머와 감광재, 첨가제, 솔벤트를 녹여 만드는 폴리머 합성 기술도 중요하다.
최신 반도체 공정인 ArF 엑침용 노광기의 포토레지스트를 상용화했고 오는 2015년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용 포토레지스트도 개발 완료 단계다. 차세대 반도체 공정 기술인 핀펫(FinFET, 물고기 꼬리모양), 터널펫(TurnelFET) 트랜지스터 성능도 포토레지스트가 좌우한다.
LCD 분야에서는 TFT용 포토레지스트와 컬러필터용 블랙 레지스트 두 가지를 생산한다.
포토레지스트 기반 기술은 플라즈마를 이용한 박리·평탄화 재료, 코팅, 세정, 에칭 기술로 발전했다. 반도체 패키지의 범프(볼), 플립칩, 칩온필름(COF), 웨이퍼레벨패키지(WLP)에 필요한 접착제와 레지스트 코팅기 등 장비까지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덕분에 이 회사의 LCD 액정 코팅기 `스핀레스(Spinless)`는 5년 전 디스플레이 업계 설비 투자가 한창일 때 점유율이 50%에 육박했다.
올해 말 개발 예정인 실리콘관통전극(TSV) 장비도 TOK공업의 주력 사업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지난 4년간 얇은 웨이퍼를 지지하는 소재를 붙였다 떼는 장비(다이본딩-디본딩)와 관련 소재를 개발해왔고 반도체업체가 TSV를 도입할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출시할 계획이다. 일반적인 지지 기판으로는 순수 실리콘 웨이퍼가 주로 쓰이지만 이 회사가 개발한 건 유리기판이다. 유리에 구멍을 뚫어 접착제와 분리액을 흘려 넣는 방식이다.
◇과감한 투자와 고객 경영
사가미 센터에는 장비 가격만 500억원을 웃도는 최신형 이머전(Immersion) 노광 장비가 있다. 반도체업체들도 투자를 고심하는 고가 장비지만 포토레지스트 성능 평가를 위해 도입했다. 개발본부 160명, 신사업개발부 15명, 장치개발부 10명 등 폭넓은 R&D 인력도 있다. 매년 매출액의 8~10%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사토 개발본부장은 “R&D 비용을 더욱 늘릴 계획도 있다”고 설명했다.
과감한 투자로 개발한 제품을 영업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고객사가 해외에 진출하면 TOK공업도 주변에 영업소를 만든다. 한국·일본·대만 반도체업체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고객사와 활발하게 교류해 정보 채널도 다양하게 뒀다.
◇태양전지·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바이오에서 미래 먹을거리 찾는다
TOK공업, IBM, 셸 3사는 태양전지 제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공동 연구개발(R&D)을 추진 중이다. 원천 기술과 사파이어 기술을 가진 IBM과 확산제 기술이 있는 TOK공업, 패널을 생산하는 셸이 차세대 태양전지를 만든다. 광전도 유리기판 위에 전극을 패터닝할 때 확산제를 발라 증착 비용을 줄인다. 태양전지 변환 효율은 15%까지 높일 수 있다.
MEMS 센서용 소재, 바이오칩 개발도 활발하다. 캡슐 형태의 먹는 내시경, 마이크로 배터리 등 미세가공 기술이 기반이 되는 어떤 제품이라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저온폴리실리콘(LTPS) 디스플레이 소재 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