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도 소재 A주유소는 지난 2011년 10개 주유기 가운데 5개에 정량 조작 장치를 설치했다가 관계 당국에 적발됐다. 이 주유소는 주변보다 리터(L)당 60~70원씩 싸게 팔았지만 리모컨으로 주유량 계기판을 조작해 실제로는 평균 3% 가량 적게 주유했다. 주유기 유량부에서 연산장치로 보내는 라인에 신호변경 장치를 장착하고 원격제어하는 방식으로 정량에 모자라도록 주유기를 조작한 것이다.
#2. B씨 등은 지난해 20L 이상을 주유하면 정량보다 4~8% 적게 들어가는 변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주유기 연산장치 회로기판에 불법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단속 기준이 20L라는 점을 감안해 처음 20L까지는 정상 주유한 후 이를 넘어가면 정량에 모자라도록 조작했다. 이들은 변조 프로그램을 내장한 주유기 메인보드를 개당 70만원에 판매책에 팔아넘기다 경찰에 붙잡혔다.
주유기 불법 조작으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다. 주유소를 찾을 때마다 국민들의 지갑에서 소중한 돈이 새어나간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불법 방지기술을 개발·보급해 주유기 조작을 원천 방지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능화하는 불법 주유기
과거 주유소에서는 기계식으로 물리적인 조작행위가 이뤄졌지만 최근 2~3년 사이 운영프로그램을 변조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소비자들이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IT 선도 국가지만 오히려 이 기술이 불법과 음성적인 지하경제로 연결된 것이다.
불법 주유기는 단속이나 경찰 수사망에 걸린 후에야 노출되기 때문에 이로 인한 피해액을 정확히 추산하기 힘들다. 주유소를 찾는 소비자들은 언제어디서 불법 주유기 피해를 입을 수 있지 몰라 불안해 한다. 피해 규모를 집계하기 어려운데다 정상적인 주유소마저 소비자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불법 주유기 문제는 심각하다.
일반적인 주유기 사용 오차도 소비자 편익을 저해한다. 주유기는 계량기와 저장탱크·배관 등 설치 환경에 따라 오차 발생 가능성이 존재한다. 주유소는 주유기 부품 마모 정도를 비롯해 온도, 유증기 회수설비 등의 영향을 감안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실제 주유량이 표시량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받는다.
우리나라는 주유소에 설치된 주유기에 적용하는 법정 사용오차를 ±0.75%로 규정했다. 20L 주유시 정량에 비해 150mL씩 많거나 적음이 허용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기준이 악용돼 대부분 주유소가 사용오차 기준 내에서 정량보다 적게 주유한다는 점이다. 2011~2012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유기 평균오차는 20리터 기준 -43.97mL다. 실 주유량이 표시량보다 적지만 법정 오차 범위 안쪽이어서 단속 대상은 아니다.
액체용 계량기 기술기준 고시에 따라 주유기 오차를 0에 가깝도록 조정하도록 의무화돼있지만 현장에서는 별 효력이 없다.
결국 소비자만 손해를 본다.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만 연 490억원에 달하는 돈이 소비자 지갑에서 새어나간다. 여기에 불법적으로 이뤄지는 조직적인 주유기 조작까지 합치면 소비자들의 피해는 더욱 커진다.
◇일회성 넘은 원천 방지기술 보급해야
아날로그 방식이었던 각종 계량기가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사용 편리성이 높아졌다. 반대로 그만큼 불법 조작 위험도 커졌다.
주유기를 포함한 계량기가 하드웨어(HW) 위주에서 소프트웨어(SW) 요소를 확대하는 것에 맞춰 첨단 기술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성욱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계측산업센터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계량기가 점차 IT융합제품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SW 조작 방지와 보안 강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유기 전자부 메인보드에 설치된 임베디드 SW의 무결점을 검증하는 한편 스마트폰 유심칩 같은 개별 주유기 보안인증장치를 개발해야 한다. 주유기 SW 업그레이드 또는 변경시 사전 허가된 자만이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주유기 부정사용과 위변조를 막는 방법 중 하나다.
갈수도록 고도화하는 무선통신 방식 불법 주유기를 적발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주유량에 이상이 감지되거나 유량부 메인보드에 조작 시도가 나타나면 관련 기관에 통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주유기 오차를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대부분 실 주유량이 표시량을 밑도는 것을 감안하면 오차를 최소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오차 기준을 보다 엄격히 적용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일부 국회의원이 법정 사용오차를 현 ±0.75%에서 ±0.5%로 축소하는 `석유 및 대체석유연료 사업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법 개정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우선적으로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주유기 성능 및 환경 개선 작업이 시급하다.
정동희 기술표준원 적합성정책국장은 “대부분 주유기에서 표시량보다 적은 양을 주유하고, SW 변조 등 지능적인 불법행위가 늘고 있다”며 “오차개선과 조작방지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해 국민 소비생활을 보호하고 공정 상거래 기반을 조성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